[데스크가 만났습니다]안경수 네오랩컨버전스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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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경수 네오랩컨버전스 회장, 사진=박지호기자 jihopress@etnews.com
<안경수 네오랩컨버전스 회장, 사진=박지호기자 jihopress@etnews.com>

안경수 네오랩컨버전스 회장은 직업이 '임원(혹은 사장, 회장)'이다. 30대 초반에 대우전자 이사 자리에 오른 그는 삼성그룹 비서실 팀장, 삼성전자 상무, 삼호물산 사장, 효성그룹 부사장, 노루페인트 회장 등 국내 대기업 임원을 두루 거쳤다.

한국후지쯔, 소니코리아 등 일본 기업 한국법인 회장은 물론이고 일본 본사 핵심 중역 자리에도 올랐다. 한국인으로 후지쯔 본사 경영집행역에 오른 이는 안 회장이 처음이다. 그 후 소니 본사 부사장 겸 B2B솔루션 부문 대표를 역임했다.

임원 경력만 30년이 넘는다. 최고경영자(CEO)로 일한 기업에서 올린 경영 성과에 '경영 구루(Guru)'로도 불린다.

한국과 일본의 내로라하는 글로벌 대기업을 경영한 그가 벤처기업 경영자로 다시 돌아왔다.

안 회장이 새롭게 몸담은 네오랩컨버전스는 디지털과 아날로그를 연결하는 '스마트 펜'을 선보여 주목받은 스타트업이다. 미세한 코드가 인쇄된 종이에 일반 펜을 사용하듯 필기하면 스마트폰 앱에 자동 저장된다. 필기 마니아와 일러스트레이터 등을 중심으로 충성도 높은 이용자층을 확보해 나가는 회사다.

안 회장을 만나 벤처기업에서 다시 경영 일선에 복귀한 배경과 향후 계획을 들었다.

[데스크가 만났습니다]안경수 네오랩컨버전스 회장

-오너가 아니면서도 30년 이상 임원이나 사장, 회장으로 지내왔다. 샐러리맨에게는 꿈 같은 이력이다. 비결은.

▲경영 소신이 회사에 관철되도록 최선을 다해 일해왔다. 그렇지만 '월급의 노예가 되지 말자'고 생각했던 게 비결이다.

물론 현실을 무시할 수는 없다. 모든 사람이 이렇게 직장생활을 할 수는 없다. 나는 예외적인 사례일 것이다.

만 31살에 대우그룹 이사가 됐다. 처음부터 책임을 져야 하는 자리에서 시작했다. 조직 리더로서 제대로 역할을 못하면 당연히 물러나야 했다. 조직을 발전시키고 앞으로 끌고 가지 못하면 그 자리를 지킬 이유가 없다.

물론 사주(오너)가 아닌 전문경영인이라는 한계도 있었다. 최고경영자라고 하더라도 사주와 가고자 하는 방향이 다를 수 있다. 사주의 방향이 옳으면 공부하고 따라야 하지만, 옳지 않은 방향을 강조한다면 미련 없이 떠나야 한다. 지금까지 이를 지키면서 살아왔다. 이런 소신은 10번째 직장인 네오랩컨버전스에서도 이어갈 것이다.

소신을 지키기 위해서는 내가 몸담았던 곳에서 반드시 좋은 실적을 남겨야 한다. 또 일했던 조직의 조직원들에게 내가 왜 그만두는지도 명확히 설명해야 한다. 그러면 내 가치관을 사려고 하는 곳이 또 생긴다.

-경력의 대부분이 대기업이다. 그런데 이번에는 왜 벤처인가.

▲우리 경제 구조에서 벤처는 중요하다. 벤처는 우리 경제에 큰 과제로 부상하고 있는 일자리 문제 등 다양한 경제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대안이 될 수 있다.

현재 우리나라는 정부지원을 바탕으로 많은 벤처 창업이 일어난다. 그러나 창업 3~4년 후면 대부분이 망할 정도로 성공하기 어렵다. 창업 벤처를 영속성 있는 기업으로 만들어주지 못한다면 또 다른 사회 문제를 야기할 수 있다.

이런 측면에서 내 역할이 있다고 생각했다. 벤처 창업자의 기술과 아이디어, 열정에 나 같은 사람의 다양한 경험이 접목되면 지속적인 고용이 창출 될 수 있는 성공모델을 이룰 수 있다고 생각했다.

나는 스스로 창업보다는 누군가 만들어 놓은 회사를 더 크게 키우는 데 적합한 사람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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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까지 경영을 맡아왔던 회사와 어떤 차이가 있나.

▲경영에서 회사 규모가 중요한 요소는 아니다.

미국에 있다가 1983년 대우전자 임원으로 한국에 돌아와 컴퓨터 사업을 담당했다. 4~5명으로 시작한 신규사업으로 사내벤처와 마찬가지였다. 이후 수십조원 규모 회사까지 경영했지만 마음에는 언제나 벤처 DNA가 남아 있었다. 물론 대기업이나 큰 조직에 오래 있다 보니 제도와 시스템의 차이는 느낀다. 그럼에도 경영의 근본은 크게 다르지 않다.

-네오랩컨버전스와는 어떻게 인연을 맺었는지.

▲처음 지인과 식사 자리에서 이상규 대표(창업자)를 소개받았다. 첫 자리에서 들었던 말이 “한국의 에릭 슈미츠를 찾습니다”였다.

구글 성공에는 창업자인 세르게이 브린과 래리 페이지, 그리고 전문경영인으로 영입된 에릭 슈미츠의 시너지가 결정적이었다는 것이다. 네오랩컨버전스 성장을 이끌어줄 전문경영인으로 함께 하자는 제안이었다.

-대표 제안만으로 합류를 결정하지 않았을 것 같다.

▲이공계 박사로 경력을 시작했지만 30여년을 경영쪽에 몸 담았다.

경영을 맡으면서 어딜 가나 제일 강조했던 것이 '사람'이다. 유능한 사람이 모인 조직만 갖췄다면 기술은 나중에 구할 수도 있다. 예전 벤처는 기술이 있어야 시작한다고 생각했지만, 이제는 사람과 팀웍이 더 중요하다. 그래서 가장 먼저 대표가 어떤 사람인지를 살폈다. 대표를 보면 조직을 어떻게 이끌어왔는지 알 수 있다.

대표뿐 아니라 주력제품인 '스마트 펜'이라는 제품도 매력적으로 다가왔다.

개인적으로 디지털 펜과의 인연은 30년 전쯤 시작됐다.

1989년 삼성이 입력장치로 펜을 적용한 '그리드 펜 PC'를 선보였다. 세계 최초였다. 당시 세계 최대 컴퓨터 박람회였던 컴덱스에서 1992년 빌 게이츠가 '모든 것이 손끝에서 시작된다'는 주제로 기조 연설했는데, 당시 데모에 사용했던 제품이 삼성 것이다.

그 제품의 삼성 책임 임원이 나였다. 너무 앞선 탓에 상용제품으로는 실패했다. 운용체계도 빈약했고 네트워크 기술도 미흡했다. 개념은 갖췄지만 지금처럼 여러 기술을 융합해 쓸 만한 제품으로 구현하기는 힘들었다. 지금도 생각하면 너무 아쉬운 사업이다. 그런데 필연처럼 네오랩컨버전스에서 다시 '스마트 펜'을 만났다.

사람과 제품이 모두 매력적이다. 이 나이에 다시 신입사원의 마음이 솟아난다.

[데스크가 만났습니다]안경수 네오랩컨버전스 회장

-경영자로서 지금까지 가장 큰 전기가 있었다면.

▲처음 한국에 들어와 직장 생활을 시작하면서는 물건을 만들어 파는데 집중했다. 터닝포인트는 1996년 한국후지쯔 사장을 하면서 찾아왔다.

당시 여러 기업 임원을 했던 사람이 왜 하필 일본기업의 한국법인장을 하느냐는 이야기를 들었다.

정보산업 분야에 몸담고 있던 당시 나에게 일본 1위, 세계 2위 회사인 후지쯔는 매력있는 회사로 다가왔다. 경영자로서 세계 1등 기업을 경영하고 싶은 꿈이 있었고 그것을 이루기에 그 당시에 매우 적합한 회사로 판단돼 한국 법인장으로서 성과를 내고 이를 발판으로 일본 후지쯔 본사 경영진이 돼 세계 1위 정보통신 회사를 경영하자는 목표가 있었다.

미국에서 공부했던 나로써는 미국에 못지 않는 세계 최고가 되고 싶다고 생각했지만 당시 한국기업에서는 힘들다고 생각했다.(물론 지금은 아니지만.)

그 꿈은 2001년 한국사람으로는 처음으로 후지쯔 본사 경영진이 되면서 이뤄졌다. 임원이 되어 세계적인 정보통신 기업을 경영하다 보니 기존에 생각했던 하드웨어 개념만으로는 되지 않는 부분이 컸다. 하드웨어는 문제를 푸는 도구다. 하드웨어 자체가 목적이 되면 사업이 성공하기 어렵다는 점을 깨달았다.

예를 들면 서울에서 부산을 가는 방법 중 하나가 자동차인 것이지 자동차를 잘 만든다고 부산을 빨리 갈 수는 없다. 부산까지 간다는 문제를 푸는 방법을 찾아야지 그저 좋은 차를 만들면 빨리 간다는 생각을 바꿔야 한다.

-네오랩컨버전스 제품도 도구(하드웨어)가 아닌가.

▲네오랩컨버전스에 와서도 펜을 잘 만들어 팔기보다는 스마트 펜이 인류에게 어떤 가치를 가져다 줄 것인지에 초점을 맞췄다.

최근 회사 비전도 새로 만들었다. “We create the pen that connects human life and the digital world, inspiring people to achieve more.(우리의 펜은 인간과 디지털을 연결하여 더 많은 것을 이루게 한다)” 인간 삶을 디지털 세계와 연결시켜 인류가 무엇인가 더 할 수 있게 영감을 주자는 의미다.

우리는 '메이크 펜'이라고 하지 않는다. '크리에이트 펜'이라 한다. 우리는 펜을 만드는 전문 업체지만 중요한 건 펜이 아니다. 디지털에 쉽게 접근하지 못하는 이들의 애로를 해결하고 그 동안 하지 못했던 것을 할 수 있도록 해주는 수단이 펜일 뿐이다.

서울에서 부산을 빨리 가는 게 목적이지 좋은 차를 만드는 게 목적이 아니다.

회사의 비전을 통해 우리가 왜 펜을 창조하는지의 목적에 대한 관점을 바꾸고자 했다.

안경수 네오랩컨버전스 회장(왼쪽)과 본지 홍기범 경제금융증권부장이 가산동 네오랩컨버전스 본사에서 안 회장의 경영 철학에 대해 대화를 나눴다.
<안경수 네오랩컨버전스 회장(왼쪽)과 본지 홍기범 경제금융증권부장이 가산동 네오랩컨버전스 본사에서 안 회장의 경영 철학에 대해 대화를 나눴다.>

-최근 기업 간 양극화가 심화되고 있다. 어떻게 풀어가야 하나.

▲그동안 대기업과 중소기업이 상생하는 생태계를 구축하자는 말은 끊임없이 나왔다. 그러나 생태계는 자연스럽게 이루어지는 것인데 어떻게 인위적으로 구축하자는 것인가.

생태계에는 사자나 호랑이, 코끼리도 있지만 사슴, 쥐, 나무, 꽃, 풀도 있다. 그런데 생태계를 만들자면서 우리는 강하고 큰 동물만 존재하는 생태계를 구축하자고 한다. 호랑이, 사자만 있는 생태계가 가능한가.

국가의 할 일은 생태계 법칙이 무너지지 않고 자연스럽고 건전한 환경이 유지될 수 있도록 노력을 쏟는 것이다. 대기업-중소기업 생태계를 어떻게 하자 굳이 언급할 필요가 없다.

이전부터 우리 산업계에 항상 따라다닌 두 가지 테마가 있다. 부품산업과 중소·중견기업 육성이다. 정권이 바뀌고 정부 조직이 개편될 때마다 외쳤고 수십년간 수십조원 이상을 투입했는데 여전히 똑같은 소리를 한다. 결국 '생태계'에 대한 얕은 인식과 4~5년씩 마다 바뀌는 일관성 없는 국가 정책이 맞물려 생겨난 일이다.

대기업을 무조건 적대시하는 사회 분위기도 경제 전체를 위축시키는 요인이다. 대기업 오너 일가의 잘못과 대기업의 잘못은 다르다. 사주가 잘못했다고 기업까지 적대시해서는 안 된다. 자본주의는 주주가 보유한 주식 비율만큼 권한과 책임을 지는 구조다. 이러한 자본주의 일반 법칙만 예외 없이 철저히 지켜지는 사회의 분위기와 제도면 충분하다.

[데스크가 만났습니다]안경수 네오랩컨버전스 회장

<안경수 회장은>

1974년 서울대 화학공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스탠퍼드대 대학원에서 화학공학 석사, 재료공학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1984년 한국으로 돌아와 30대 초반의 나이에 대우전자 컴퓨터사업본부장을 맡으며 기업 임원 생활을 시작했다. 이후 다우기술 공동대표를 지내다 1989년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 스카우트로 삼성그룹 회장비서실 정보통신기획담당 이사가 됐다.

삼성그룹 회장비서실 경영관리팀장, 삼성전자 PC영업담당 상무 등으로 일하다 1993년 삼호물산으로 적을 옮겨 사장을 맡았다. 1995년에는 효성그룹 종합조정실 부사장을 맡기도 했다.

1996년부터는 일본 정보통신기술회사 후지쯔에서 한국후지쯔 사장, 대만후지쯔 회장, 한국후지쯔 회장 등을 차례로 역임했다. 이어 한국인으로는 처음으로 일본 후지쯔 본사 경영집행역 자리에 올랐다. 2007년에는 소니코리아 회장 겸 일본 소니 기업간전자상거래(B2B) 솔루션 무선사업본부장을 맡았다. 2010년부터 2016년까지는 노루페인트 회장으로도 일했다.

대담=홍기범 경제금융증권부장

정리=박정은기자 jepark@etnews.com

사진=박지호기자 jihopress@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