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라인]처방전을 바꿀 때가 됐다

[데스크라인]처방전을 바꿀 때가 됐다

현 정부는 촛불혁명으로 탄생했다. 국민의 준엄한 선택에서 출발했다. 민심을 청취하고 여론에 귀를 기울여야 하는 운명이다. 출범한 지 20개월이 흘렀다. 국민 목소리가 제대로 전달되는지 의구심을 품는 사람이 주위에 늘었다. 문재인 대통령은 기자회견뿐만 아니라 주요 경제단체장, 기업인 간담회에서 지표를 언급한다. 정부가 노력하고 있고, 경제지표상으로는 좋다는 게 요지다. 정부 당국자 역시 우리 경제 펀더멘털은 나쁘지 않다고 강조한다. 체감경기와는 온도차가 느껴진다. 괴리는 어디서 오는 것인가.

상당수 중소기업·자영업자가 어려움을 토로한다. 안산·반월공단 기계소리도 잦아들었다. 경기도 인근 공장에서 근무하던 한국인뿐만 아니라 중국인 근로자들이 새벽 인력시장을 찾는다. 오전 4시 서울지하철 7호선 남구로역 인근에는 일감을 찾으려는 구직자로 넘쳐난다. 퇴직자와 실직자도 가세한 탓이다. 지방 사정도 크게 다르지 않다. 지난 설날 밥상머리 민심에서도 읽힌다. 친지는 물론 지방 친구들 주름이 늘었다. 하루하루가 버거운 대다수 서민들에게 사법 농단, 김경수 경남도지사 구속 논쟁은 사치에 가깝다.

최근 열린 지방자치단체의 실업급여 설명회장에서는 발 디딜 틈조차 없었다. 연말연초에 휘몰아친 정리해고와 희망퇴직자가 늘어난 것이 요인으로 작용했다. 일시적 현상일 수 있지만 이쯤 되면 '일자리 정부'가 무색하다. 일자리는 최고 복지를 표방한 정부 캐치프레이즈가 공허하게 들린다. 실업자 122만명 시대다. 통계청이 발표한 실업자는 1월 기준 2000년 이래 19년 만에 가장 많다. 1월 실업률 역시 9년 만에 가장 높은 4.5%를 기록했다. 결과적으로 수십조원에 이르던 일자리 창출 예산은 실효적인 대책이 아니었다.

이런 상황에서 정부 대응은 우려스럽다. 정부는 엊그제 무거운 책임감을 느끼고 공공 일자리에서 2000명 이상을 추가 채용하겠다고 밝혔다. 이대로라면 '공공일자리 정부'가 정확한 비유다. 치료 효과가 없는 동일한 처방전이 계속 발급되는 셈이다. 이렇다 보니 청년들은 노량진·신림 등 고시촌으로 몰린다. 얼마 전 우리나라 공무원 시험 열풍이 해외 토픽에 올랐다. 미국 로스앤젤레스타임스는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는 한국 청년의 모습을 담았다. 하버드대 입학보다 어렵다고 설명했다. 미국인 시각에서는 공시 열풍이 의아할 것이다. 청년들 선택은 자연스럽다. 공공 부문에 돈이 몰리고, 일자리가 있기 때문이다. 그것도 '너무나도 지속 가능한 일자리'가 기다린다.

우리 경제는 활력을 잃어 가고 있다. '고용 없는 성장' 국면에 접어들었다. 물론 이 같은 현상은 한국의 문제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처럼 전 세계 공통 현상은 아니다. 일본과 미국을 보자. 일본은 '고용 있는 성장'을 이어 간다. 미국은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주요 기업 제조공장을 유치하면서 제조업이 살아나고 있다. 미국 실업률은 지난해 11월 말 기준으로 3.7%였다. 49년 만에 가장 낮은 수치를 기록했다.

이제는 정책의 획기적 전환이 필요하다. 막대한 재정과 예산 투입을 통한 대증요법으로는 더 이상 일자리와 실업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앞으로 민간과 공공 부문 일자리를 구분해 보자. 청와대에 설치돼 있는 일자리 상황판 역시 '민간 일자리 상황판'으로 교체할 필요가 있다. 민간 일자리 감소를 공공으로 메워서는 체감경기가 나아질 수 없다. 아랫돌 빼내 윗돌 괴는 어리석음을 범해선 안 된다.

김원석 성장기업부 데스크 stone201@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