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라인]2006년 모바일 특구와 2019년 반도체 클러스터

[데스크라인]2006년 모바일 특구와 2019년 반도체 클러스터

일선에서 한창 취재하던 시절인 2005년 12월에 기자는 '삼성전자, 테스트베드용 GSM망 구축한다'는 제하의 기사를 쓴 적이 있다.

GSM은 유럽의 대표적인 이동통신 시스템으로, 당시 세계 80%가 사용하던 표준이다. 기술적으로 TDMA(시분할)를 기본으로 했다. 우리나라는 CDMA(코드분할) 방식을 사용했지만 휴대폰 제조사는 수출을 위해 GSM 단말기를 개발, 생산하고 있었다.

그러나 국내는 GSM 통신망이 없었기 때문에 단말기를 개발한 뒤 시험·인증은 유럽에서 진행해야만 했다.

삼성전자는 이를 만회하기 위해 테스트베드 개념의 GSM망을 국내에 구축해 진행키로 한 것이다. 수원 연구소와 구미 공장, 독일을 연결하는 망을 구축하고 이듬해부터 가동하기로 했다. 당시 정보통신부에 국내에서 쓰지 않던 1870㎒ 대역의 사용 허가까지 신청한 상태였다.

망을 구축하면 평균 1년 걸리던 휴대폰 개발과 시험 기간을 3~4개월 앞당길 수 있었다. 노키아, 모토로라 등과 경쟁에 시동을 걸던 시점이어서 삼성전자에는 매우 중요한 프로젝트였다.

결론부터 말하면 이 프로젝트는 실현되지 못했다. 전혀 엉뚱한 곳에서 문제가 불거졌다. 기사가 나가고 난 뒤 GSM망을 삼성전자뿐만 아니라 국가 차원에서 활용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실제 이듬해 2월 정통부가 CDMA 상용화 10주년에 맞춰 모바일 1등 국가를 표방한 'M-1(Mobile-first One)' 프로젝트 추진을 발표했다. 핵심이 모든 통신 방식의 모바일기기가 소통하는 '모바일 특구(MSD: Mobile Special District)' 조성이다. 세계 최초, 최대 규모라는 수식어를 붙였다. 전문대학원 설치와 관련 생태계 조성까지 계획은 커졌다.

정부가 민간 기업 아이디어에 살을 붙여 판을 키운 것이다.

이렇게 되자 모바일 특구를 유치하기 위해 각 지방자치단체와 정치인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한동안 지역 결정을 두고 논란은 확대됐다. 기업 실리보다 정치 이슈가 판을 흔들었다.

결국 공전을 거듭한 끝에 정부 계획은 흐지부지됐고, 그해 8월 말께 당초 계획대로 기업이 주도하는 형태로 대폭 축소됐다.

그리고 기업도 결국 이를 제대로 실현하지 못했다. 휴대폰 산업에서 1년 가까운 시간은 결코 짧은 시간이 아니었다.

가정은 존재하지 않겠지만 과거에 당시 GSM망을 구축해서 제품 개발 기간을 단축했다면 우리 휴대폰 산업이 지금보다 더 확고한 위치를 확보했을 지도 모른다.

'오지랖이 넓다'는 말이 있다. 오지랖은 윗옷에 덧입는 겉옷의 앞자락이다. 남의 일에 지나치게 간섭하는 사람을 지칭할 때 많이 쓰인다. 그런데 오지랖이 넓다는 말에는 원래 '남을 배려하고 감싸는 마음이 넓다'는 뜻이 담겨 있다. 그 마음이 지나쳐서 본말을 전도시키면 전혀 다른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

최근 SK 하이닉스의 반도체 클러스터 부지 선정 과정을 보며 오래 전 '모바일 특구' 사례가 떠오른다. 이번에도 각 지자체 간 유치 경쟁이 뜨겁다. 수도권 규제 형평성 문제나 정치적 이해관계까지 거론된다. 클러스터 유치가 지역 경제에 미칠 영향이 크기 때문에 이해도 간다.

그러나 이번 사안의 핵심은 기업과 우리나라 반도체 산업 경쟁력이다. 다른 가치가 개입해서는 안 된다. 우수 인재가 모이고 기업 간 협력과 시너지를 최우선 고려해야 한다. 판단 기준이 이에 부합하면 된다.

홍기범 금융/정책부 데스크 kbhong@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