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재민 교수의 펀한 기술경영<153>애자일 혁신

박재민 교수의 펀한 기술경영<153>애자일 혁신

애자일(agile). 날렵한, 민첩한, 재빠른, 기민한 같은 뜻이다. 소프트웨어(SW) 개발 시간을 줄이기 위해 고안된 방법론의 하나다. 한때 SW 개발자나 알던 용어가 이제 혁신에서 빠질 수 없는 것이 됐다.

예측이나 한 듯 대럴 릭비 베인앤드컴퍼니 글로벌 이노베이션 부문 총괄대표, 작가 제프 서덜랜드, 히로타카 다케우치 미국 하버드대 경영대학원 교수는 2016년 '에자일 혁신의 숨겨진 과거'라는 기고문을 이렇게 끝맺는다. “한 가지만큼은 분명해 보입니다. 애자일 방식 뿌리가 어디서 왔든 모든 산업과 기능으로 계속 확산될 거라는 점입니다.”

2014년 랠프 해머스는 다국적 금융기업 ING의 최고경영자(CEO)로 취임한다. 문제가 산적해 있었다. 한마디로 고객은 페이스북 쓰듯이 은행 업무 보기를 원하고 있었다. 글로벌 기업 ING조차도 변화를 기민하게 수용하고 수행할 수 없었다. 해머스는 네덜란드 지부장인 닉 주를 불러들인다.

@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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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하면 구닥다리 조직을 좀 더 유연하고 더욱더 기민하게 바꿀 수 있을까. 주는 3500명 규모의 네덜란드 헤드쿼터를 세 형태로 재조직하기로 한다.

첫 번째는 '트라이브'로 부르기로 했다. 부동산 담보 대출, 증권, 개인금융 같은 특정 사업부를 의미했다. 각 트라이브는 대략 150명으로 구성했다. 통상 비즈니스는 여기 몫으로 뒀다.

두 번째 조직은 '스쿼드'라고 불렀다. 고객 수요를 조사해서 새 상품을 만드는 기능이 주어졌다. 스타트업처럼 신규 프로젝트 시작부터 끝까지 이 스쿼드가 맡도록 했다. 규모는 10명을 넘지 않았지만 마케팅·데이터·고객·IT·상품 전문가를 묶었다.

세 번째는 '챕터'다. 전문성이 비슷한 사람을 모았다. 예를 들어 스쿼드나 트라이브에 흩어져 있던 데이터 애널리스트나 마케팅 담당자는 각자 챕터에 모일 수 있었다. 이들은 성공 사례를 공유하고 각자 챕터와 스쿼드로 돌아가 전파했다.

처음 며칠 동안은 우왕좌왕할지 모른다는 우려가 나왔다. 각자 고객 수요를 따라가다 보면 기업 전략과 멀어질 수 있었다. 해머스는 분기별 성과점검 보고서(QBR)라는 제도를 추가했다. 조직의 기민성을 높이려 한 이 실험 결과는 대성공이었다. 고객 만족도와 직원 몰입도는 모두 높아졌고, 상품 출시는 빨라졌다. 오래된 경력직은 혁신이 어려울 거라는 상식도 불식시켰다. 한 경영진은 “고참이 신출보다 훨씬 잘 적응했다”고 평했다. ING는 고객 변화를 수용하기 위해 젊은 직원이 필요하다는 부담을 덜 수 있었다. 3500명으로 시작한 이 실험은 4만명으로 확장됐다.

어떻게 보면 경영 교재에 흔한 매트릭스 조직을 보는 듯하다. 그러나 이것이 기능 부서에 소속돼 있으면서 프로젝트에 참여하는 것이라면 ING의 기민성 조직은 뭔가 다르다. 혁신과 고객 문제에 대응한 기민성은 스쿼드에서 발휘되도록 했고, 베스트 프랙티스와 정보 공유는 챕터 몫이다. 분기별 성과 점검 보고서는 기업 전략과 소통하는 채널이 됐다.

율리우스 카이사르는 '갈리아 원정기'에서 자신이 맛본 게르고비아의 패전 원인을 규칙 없는 행동과 자신이 우월하다는 오만함에 있었다고 회고했다. 해머스의 혁신에서도 정작 속도와 기민성을 높이는 과정에서 나타날 혼란을 어떻게 막을까 하는 고민이 문득문득 엿보인다. 해머스는 나름대로 멋진 해결책을 찾아낸 셈이다.
박재민 건국대 기술경영학과 교수 jpark@konkuk.ac.kr

박재민 건국대 기술경영학과 교수
박재민 건국대 기술경영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