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기자 칼럼]민간 충전사업자 없는 대한민국

[전문기자 칼럼]민간 충전사업자 없는 대한민국

“우리 회사가 돈이 부족해서 환경부 충전 사업자가 되려는 게 아닙니다. 정부 사업자가 안 되면 사업을 못하는 국가자격증처럼 되어서 그렇습니다.”

최근 환경부의 전기차 충전서비스 사업자 참여를 고민하고 있는 한 기업체 담당자의 말이다.환경부가 이달 말 민간 충전서비스 '신규 사업자 선정 및 기존 사업자 재평가'를 실시한다. 정부는 2017년부터 전기차 충전인프라 확대를 위해 민간 사업자를 매년 선정해 왔다.

정부 사업자에 선정되면 사업자는 정부로부터 충전기와 설치비 등 보조금을 지원받는다. 이 보조금은 2017년에는 완속충전기(7㎾h급) 기준으로 최대 500만원, 올해는 최대 350만원이다. 여기에 사업자는 정부가 전국에 운영되고 있는, 3000기가 넘는 급속충전기(50㎾h급)를 비롯해 완속 공용충전기 약 2만기와의 로밍(사용자 호환) 문제를 단번에 해결할 수 있는 혜택도 받는다.

가장 큰 혜택은 70만~90만원 수준의 충전기와 설치 공사비를 지원받기 때문에 자체 사업비가 전혀 들지 않는다는 점이다. 오히려 충전기를 설치하는 것만으로 충전기 당 수십만원의 이익을 챙기게 된다.

충전 서비스로 버는 돈보다 제품·설치비로 차액을 남기는 부분이 더 크다. 지난해 환경부 사업자 8곳이 서비스 요금이 아닌 설치만으로 벌어들인 매출만 30억~40억원에 이른다.

정부가 지원하는 예산은 말 그대로 '보조금'인데 이 보조금이 전체 비용으로 활용되는 게 일상이 됐다.

충전사업자 8곳 가운데 자체 예산으로 서비스 품질 확대나 시설 투자를 하는 곳은 거의 찾아볼 수 없다. 정부가 사업자를 운영하면 인프라 확대와 서비스 품질 향상에 큰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했지만 이 같은 목적은 지켜지지 않았다. 잘못된 악습이 고착화됐다.

이렇다 보니 산업통상자원부에 의해 만들어진 공기업 한국전력공사, 환경부가 지정한 사업자 이외에 민간 충전인프라 운영 사업자는 단 한 곳도 없다. 그렇다고 정부 사업자들이 충전 서비스 품질을 개선하거나 사용률을 높일 대단한 모델을 내놓는 것도 아니다. 사업 모델은 매년 비슷하다. 전기차 사용자의 접근성과 상관없이 충전기 설치에만 급급하다 보니 매년 부실 공사와 사용률이 저조한 충전기가 매년 쏟아져 나오는 실정이다.

지난해에는 경쟁 과열로 편법적인 영업에다 환경공단 직원을 사칭하고 공문서를 위조해 보조금을 받는 사태까지 빚어졌다. 올해 신규 사업자가 아직 선정되기도 전에 사업자 지위를 위세하며 영업하는 업체도 등장했다.

이제는 바꿔야 한다. 정부의 전기차와 충전기 보조금은 매년 줄어들고 있고, 보조금 지급은 몇 년 안 돼 중단된다. 시장을 확대하고 주도할 정상적인 사업자가 나와야 한다. 환경부는 폐쇄적인 충전사업자 운영 정책을 점차 줄이고 전기 공사와 유지보수, 서비스 운영 능력 등 일정 자격을 갖춘 업체라면 누구든지 정부 사업에 참여할 수 있도록 제도를 개선해야 한다. 한국에너지공단 충전기 지원 사업처럼 누구에게나 설비의 일부 보조금을 지원하는 방법도 고려할 만하다.

정부는 로밍이나 충전소 위치 등 정부가 취득한 정보를 민간과 공유하고, 민간이 주도할 수 있는 시장 환경을 조성해야 한다. 지금의 폐쇄형 사업을 개방형으로 전환한다면 불법 영업과 정부 예산 남용 등을 줄일 수 있다.

박태준 자동차 전문기자 gaius@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