빅데이터 등 정보자산도 '상품'…독점 생기는 M&A 불허한다

English Translation
ⓒ게티이미지뱅크
ⓒ게티이미지뱅크

기업 간 인수합병(M&A)으로 빅데이터 등 정보 자산 독점이 일어난다고 판단되면 정부가 기업결합을 불허할 수 있다. 아직 상품이 출시되지 않은 혁신 시장은 연구개발(R&D) 비용 지출, 특허출원 등을 근거로 시장 집중도를 산정해 필요 시 기업결합을 불허할 수 있다.

글로벌 기업이 미래 시장 독점을 위해 국내 잠재적 경쟁 기업을 M&A하려는 시도가 차단될 것으로 기대된다. 다만 정부가 이런 기준을 잘못 운용하면 '혁신 M&A'가 오히려 위축될 수 있다는 우려도 배제할 수 없다. 이번 기준 개정이 최근 활발한 이동통신사와 유료방송사업자 간 M&A 시도에 어떤 영향을 미칠 지도 관심이다.

공정거래위원회는 개정된 '기업결합 심사기준'을 27일부터 시행한다고 26일 밝혔다.

공정위는 정보통신기술(ICT) 등 혁신 산업(혁신 경쟁이 필수적이며, 지속적으로 일어나는 산업)에서 일어나는 M&A가 혁신 경쟁을 저해하는지 등을 심사하는 기준이 미흡했다고 배경을 밝혔다. 또 빅데이터 등 정보 자산 독과점 우려가 있는 M&A에 선제 대응할 필요가 있다고 보고 이번 개정을 추진했다.

기업결합 심사 때 고려 대상에 정보 자산(다양한 목적으로 수집돼 통합적으로 관리·분석·활용되는 정보의 집합)을 추가했다. 빅데이터 등 정보 자산도 상품으로 판단, 독과점이 발생하는 M&A는 불허할 수 있는 근거를 마련한 것이다. M&A로 인해 대체하기 곤란한 정보 자산에 대한 접근이 봉쇄되는지, 정보 자산 관련 서비스 품질을 저하시키는지 등도 심사 때 고려한다.

황윤환 공정위 기업결합과장은 “4차 산업혁명 분야에서 정보 자산은 주요 원재료·상품”이라면서 “혁신 성장을 보호하기 위해 정보 자산 독점·봉쇄 우려가 있는 경쟁제한적 M&A에 선제 대응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공정위는 혁신 산업 기업결합 심사 때 시장 획정, 시장 집중도, 경쟁 제한 효과를 판단하는 기준을 제정했다.

제조·판매 이전 단계의 혁신 시장은 매출액 등으로 시장 점유율·집중도를 판단할 수 없다. 이 경우 R&D 비용 지출 규모, 혁신 활동에 특화된 자산·역량 규모, 해당 분야 특허출원 또는 출원된 특허가 피인용된 횟수, 혁신 경쟁에 참여하는 사업자 수 등을 참고한다.

혁신 시장은 기업결합 심사 때 '별도 R&D 시장'이나 'R&D·제조·판매 시장'으로 획정한다. 한 예로 특정 상품을 판매하는 A사와 유사한 상품을 개발하고 있는 B사 간 M&A가 추진될 때 둘을 경쟁 관계로 인식, 하나의 시장으로 획정해 경쟁 제한성을 심사하는 식이다.

황 과장은 “혁신 산업에서는 제조·판매 시장 경쟁과 구별되는 다양한 형태의 경쟁이 있고 M&A를 이용한 혁신 경쟁 기업 제거 등이 이뤄질 수 있지만 R&D와 제조·판매 활동이 경쟁으로 인식되지 않거나 과소평가될 수 있다”고 말했다.

공정위는 혁신 산업 기업결합 심사 때 △결합당사회사가 중요한 혁신 사업자인지 △결합당사회사가 수행한 혁신 활동의 근접성 또는 유사성 △결합 후 혁신 경쟁 참여자 수가 충분한지 등도 고려하기로 했다.

이번 기준 개정으로 글로벌 기업 등이 국내 잠재적 경쟁 기업 M&A로 미래 시장을 독점하려는 시도가 차단될 것으로 기대된다. 다만 공정위가 기준을 합리적으로 운용해 혁신을 위한 M&A를 저해하지 말아야 할 것으로 지적됐다. 일각에선 최근 활발한 이통사와 유료방송사업자 간 M&A 추진에 이번 기준 개정이 걸림돌이 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왔다.

황 과장은 “경쟁 제한성이 없는 M&A는 심사 기준에 따라 신속하게 처리하고, 경쟁을 저해하는 M&A는 적극적으로 대응할 계획”이라면서 “이통사와 유료방송사업자 간 M&A 추진도 혁신 시장으로 판단되면 이번 개정 기준에 따라 혁신 저해 효과 등을 판단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유선일 경제정책 기자 ysi@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