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유니콘은 길들여지지 않는다

상상 속 동물 유니콘은 흔히 외뿔 달린 머리에 흰 말 모습을 한 형상으로 알려져 있다. 중세·르네상스 시대 화가가 그림으로 표현하던 미끈하고 우아한 자태의 아름다운 모습이 떠오른다.

최근에는 기업 가치가 10억달러(약 1조원) 이상인 비상장 스타트업에 '유니콘'이라는 이름을 붙인다. 상장 이전의 기업 가치 1조원 이상은 유니콘처럼 상상에서나 볼 수 있다는 데서 착안했다. 최근에는 뿔이 열 개 달린 '데카콘'(기업 가치 100억달러 이상)이란 표현도 심심치 않게 들려온다.

정부는 최근 문재인 대통령이 참석한 가운데 '제2벤처 붐 전략' 보고회를 열었다.

여기서 2022년까지 유니콘 기업의 수를 20개까지 늘리겠다는 야심 찬 계획을 발표했다. 지난해 기준으로 토종 유니콘 기업은 6개로 세계 6위 수준이 됐다는 말도 덧붙였다.

모처럼 되살아난 벤처창업과 투자 열기를 확산시키겠다는 의지는 고무적이다. 그러나 상상 속의 유니콘을 그리는 수준에만 그칠 수 있다는 우려를 지울 수 없다.

유니콘 기업으로 거론되는 6개 스타트업 가운데 일부 기업은 오래 전부터 삐걱대는 소리가 들려온다. 정부의 불필요한 규제는 물론 지배 구조 등 문제로 상장 문턱을 넘지 못한 채 자금 조달에 어려움을 겪는 기업도 있다. 유니콘은 기업공개(IPO)를 통해 상상 속에서 벗어나 시장에서 현실성 있는 가치를 인정받아야만 비로소 완성된다.

물론 상상이 현실로 되는 과정은 언제나 아름답지만은 않다. 중국의 대표 유니콘으로 꼽히던 샤오미의 시가총액은 상장 6개월 만에 40%가 증발했다. 2개월이 지난 현재도 주가는 공모가를 밑돌고 있다. 보호예수가 풀리자마자 기관투자가가 대거 이익 시현에 나선 영향이 크다.

상상 속에서 아름다운 자태를 뽐내는 유니콘이 사실 평범한 조랑말일 수 있다. 현실이 되기 전에 죽어서 유니콥스(죽은 유니콘)가 될 지도 모른다. 또 건강하게 살아남더라도 길들여진 유니콘은 더 이상 유니콘이 아닐 수 있다.

결국 스타트업을 유니콘 기업으로 키우는 것 못지않게 유니콘이 연속성을 띠는 기업으로 안착할 수 있는 장기적 기업 환경 조성이 필요하다.

정부는 규제라는 울타리 없애고 마음껏 뛰어놀 수 있는 환경부터 만들어야 한다. 그래야 현실로 들어오는 유니콘이 야성을 잃지 않을 수 있다.

유근일기자 ryuryu@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