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현장에 답이 있다

[기자수첩]현장에 답이 있다

'현장에 답이 있다.'

기자 초년병 시절부터 들어온 말이다. 실제 현장에 가면 미리 알고 있던 상식이나 기초 지식이 산산조각 나는 경우가 흔하다.

최근 스마트 팩토리 기업 담당자 얘기를 들으면서 다시 한 번 현장 위력을 실감했다. 그는 “언론이나 정부 정책을 보면 스마트 팩토리가 금방 확산될 것으로 보이지만 현장 상황은 그렇지 않다”면서 “밖에서는 로봇, 5세대(G) 이동통신 기술이 스마트 팩토리를 꽃피우게 할 것이라고 들떠 있지만 내부에선 생산직 인력 감축을 우려한 노조와의 갈등이 해결 실마리를 찾지 못해 장기화될 조짐을 보이고 있다”고 지적했다. 결국 회사는 차선책을 택했다. 하청업체 먼저 스마트 팩토리를 적용, 결과를 지켜본 뒤 본사로 확장한다는 방침으로 물러섰다.

최근 일단락된 카풀 사태도 마찬가지다. 정치권은 택시와 카풀업계 간 대타협이 성공적으로 이뤄진 것처럼 묘사한다. 그러나 실상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그렇지 않다. 스타트업 업계에선 “이제 카풀 사업의 도전은 엄두도 못 내게 됐다”고 푸념한다. 출퇴근 시간 기준만 더 깐깐해졌다는 하소연이다. 택시업계와의 논쟁이 불붙기 전에 이미 카풀 스타트업 두 곳이 문을 닫았다. 서비스 가능 시간이 아침, 저녁으로 한정되다 보니 수익 모델 찾기가 어려웠기 때문이다.

현장 목소리에 실린 힘은 인공지능(AI) 산업 생태계도 송두리째 바꿨다. 불과 2~3년 전만 해도 전 세계는 머신러닝 고도화 경쟁을 벌였다. 우리나라도 뛰어들었다. 그런데 지금은 열기가 크게 식었다. 데이터 확보 쟁탈전으로 전장이 옮겨 갔다. AI를 실무에 직접 적용, 데이터 가치를 알아차린 기업이 이 같은 변화를 주도했다. 아이로 치면 머신러닝은 두뇌다. 데이터는 지능을 높여 주는 교과서다. 천문학적 돈을 주고 데이터를 사고파는 사례가 흔해졌다.

AI 국제표준 논의가 한창이다. AI 산업 백년지대계가 결정되는 순간이다. 원천 기술이 부족한 우리 입장에서는 표준이 늘수록 사용료 부담을 덜 수 있다. 그러나 논의의 마당에 국내 기업이 보이지 않는다. 국제표준을 대비하는 30여명의 전문가 가운데 기업인은 소수다. 국내 실정을 세계 무대에 전해야 하는데 현장을 가장 잘 아는 기업인이 배제된 셈이다. AI 산업 주도권이 걸린 국제표준 논의에 집중해야 할 때다. 탁상공론을 경계하고 현장에서 답을 찾으려는 노력이 절실하다.

최종희기자 choijh@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