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ISTI과학향기]나노기술로 바이오 유해물질을 예방하고 치료하자

2015년 지카 바이러스가 남미 대륙에서 발견된 뒤 미국과 아시아, 유럽을 포함한 20여개국에서 바이러스 감염자가 빠르게 늘어났다. 2018년 5월에는 인도 남부 케랄라주에서 박쥐로부터 전염되는 '니파 바이러스'로 10명이 사망했다. 우리나라도 질병 바이러스로부터 청정한 지역은 아니다. 2015년 메르스 바이러스로 인해 33명이 사망했으며, 한 달 넘는 기간 동안 격리 조치가 시행되어 경제적 손실을 겪은 바 있다.

이처럼 전염병을 일으키는 바이러스와 박테리아 같은 바이오 유해물질은 인체에 치명적인 피해를 끼칠 뿐 아니라 국가적 재난으로까지 번질 위험이 있다. 이에 과학자들은 나노기술을 이용해 바이오 유해물질로 인한 질병을 효과적으로 진단하고 치료하는 원천기술을 개발하고자 노력하고 있다.

[KISTI과학향기]나노기술로 바이오 유해물질을 예방하고 치료하자

◇나노입자 진단키트로 바이오 유해물질을 빠르게 진단

전염병이 대규모로 확산되는 걸 막으려면 감염 초기에 진단해 차단해야 한다. 그런데 아직까지 많은 전염병은 정확한 진단 결과가 나오기까지 상당 시간이 소요된다. 잠복기를 거쳐 세계로 퍼지는 걸 막기가 쉽지 않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는 데 바로 나노입자가 활용된다.

크기가 1cm3 인 물질이 1nm3의 크기로 분해될 경우 전체 표면적은 약 1000만배로 증가한다. 넓은 표면적을 가지는 나노입자는 강도, 전도성, 촉매활성, 자기적 특성 같은 다양한 물리화학적 특징을 띠게 되어 고감도 바이오 유해물질 진단이 가능하다.

바이오나노헬스가드연구단은 나노입자의 이런 특성을 이용해 지카바이러스 감염 여부를 판단하는 진단키트를 만들었다. 바이러스는 대개 항원과 항체의 결합특이성을 이용한 면역검사법으로 진단한다. 연구팀은 항체에 금 나노입자를 입혀 항원인 지카바이러스를 더 빠르고 민감하게 가려내도록 만들었다.

금 나노입자는 다양한 나노입자 중에서 바이오진단에 가장 널리 사용되고 있는 입자다. 파장을 통해 눈으로 쉽게 관찰 가능하며, 원심분리를 통해 쉽게 농축·분리할 수 있고, 생체친화력과 안정성이 높기 때문이다. 따라서 금 나노입자는 DNA 상보결합 및 단일염기 다형성 분석, 면역검정법(immunoassay), 산성도 (pH) 측정, 중금속 이온 분석, 병원성 항원 측정, 단백질 활성 분석, 암세포 진단 등 생체분석 전반에 이용된다.

기존의 분자진단(PCR)기술은 분석을 위한 전문가가 따로 필요할 뿐만 아니라 진단 결과가 나오기까지 몇 시간에서 많게는 며칠이 걸렸다. 하지만 이 연구팀이 개발한 면역진단키트를 사용하면 20분 안에 누구나 한두 방울의 혈액으로도 지카바이러스 감염여부를 확인할 수 있다.

바이오나노헬스가드연구단에서 개발한 초간편 지카바이러스 진단키트의 실제 제품 모습. (출처: 바이오나노헬스가드연구단)
바이오나노헬스가드연구단에서 개발한 초간편 지카바이러스 진단키트의 실제 제품 모습. (출처: 바이오나노헬스가드연구단)

한편 나노기술을 이용하면 수십 가지 질병을 진단하는 나노바이오 센서도 만들 수 있다. 지난해 7월, 포스텍 기계공학과 김준원 교수 연구팀이 한 개 칩으로 수십 가지 질병과 약물을 검사할 수 있는 기술을 세계 최초로 개발했다.

기존에는 한 개의 분석 칩으로 질병을 진단할 때 바이오 물질의 여러 가지 반응을 동시 분석하기 어려웠다. 이에 김준원 교수 연구팀은 물과 기름이 섞이지 않는 원리를 이용하여 분석 칩 속에 미세 막 구조물이 포함된 수많은 독립공간(30개/mm2)을 만들어 각 공간에 다양한 마이크로 입자를 배치했다. 입자 간 상호 오염 없이 여러 가지 반응을 동시에 정확하게 분석하는 미세유체기반 차세대 마이크로어레이 플랫폼을 만든 것이다. 마이크로어레이란 효과적으로 대량의 데이터를 분석하기 위하여 고체 표면에 수백 개 이상의 나노크기 물질들을 집적화한 것이다.

이 분석기술은 기존방법보다 시약 소모량을 수십에서 수백분의 1로 줄이고, 반응시간도 수배 이상 단축하여, 바이러스 검출이나 질병진단 등에 널리 활용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진단 넘어 치료까지 나선 나노기술 전동성 하이드로젤

나노기술은 바이오 유해물질 진단뿐만 아니라 치료를 위한 연구에도 기여하고 있다.

줄기세포 연구는 손상된 신경을 빠르게 재생시키거나 치료하는 데까지 나가고 있지 못하고 있었다. 하지만 지난해 12월 서강대 기계공학과 정봉근 교수 연구팀은 '전도성 하이드로젤'을 사용해 세포를 패터닝(정해진 구조나 회로를 만드는 과정)할 수 있는 기술을 개발했다.

전도성 하이드로젤은 전기전도성을 가지며 수분을 함유할 수 있는 삼차원의 친수성 고분자 구조 물질이다. 연구팀은 '은나노 와이어'를 포함한 하이드로젤이 전기전도성을 띠는 특성을 활용해 전기 자극으로 신경세포 분화를 유도했다. 은으로 된 나노미터 굵기의 얇은 극미세선인 '은나노 와이어'는 전도성이 뛰어날 뿐 아니라 가늘고 긴 형태로 유연성을 갖고 있어 잘 휘어지는 전극물질로 적합한 재료이다. 대량생산이 가능하다는 점에서 매력적이다.

전도성 하이드로젤 미세패턴에서 전기자극에 의한 신경 줄기세포의 분화 모습(왼쪽), 미세패턴에서 전기자극에 의하여 분화된 신경세포의 방향성을 분석한 결과(오른쪽). (출처: 서강대학교 기계공학과)
전도성 하이드로젤 미세패턴에서 전기자극에 의한 신경 줄기세포의 분화 모습(왼쪽), 미세패턴에서 전기자극에 의하여 분화된 신경세포의 방향성을 분석한 결과(오른쪽). (출처: 서강대학교 기계공학과)

연구팀은 하이드로젤로 신경 줄기세포를 거부반응 없이 패터닝해 원하는 형태로 재생하여 치료했다. 이 기술은 손상된 신경을 빠르고 효율적으로 재생시키고 치료하는데 응용할 수 있기 때문에, 이번 연구가 상용화된다면 줄기세포를 이용한 치료가 필요한 환자들에게 큰 도움이 될 것이다.

이렇게 바이오 유해물질 진단과 차단뿐만 아니라 질병 치료에도 앞장서는 나노기술은 메르스와 에볼라 같은 전염병을 차단하고 치명적인 질병으로부터의 재활을 도와 우리 삶의 질을 더욱 높이는 사회를 만들어가는 데 일조할 것이다.

글: 박응서 과학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