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병준의 어퍼컷]기업도 매력이 있어야 한다

[강병준의 어퍼컷]기업도 매력이 있어야 한다

며칠 사이에 뉴스 두 개가 눈길을 끌었다. 국내 뉴스와 해외 뉴스다. 국내는 구광모 LG그룹 회장 기부 소식이었다. 공기청정기 1만대를 무상으로 학교에 제공하겠다고 밝힌 것이다. 이낙연 부총리가 페이스북에 권영수 LG부회장이 총리실을 방문했다고 전하면서 일파만파 확산됐다. 또 하나는 나라밖 소식이었다. 페이스북이 민주당 대통령 선거 주자 엘리자베스 워런 상원의원의 정치 광고를 삭제했다가 다시 복원했다는 기사였다. 앞서 워런은 민주당 정견발표에서 페이스북, 아마존, 구글을 정면으로 겨냥하고 이들 기업의 폐해가 심각하다며 해체를 주장했다. 그동안 진행한 인수합병(M&A)이 반독점 법규 위반이라며 무효화해야 한다고 강경한 발언을 쏟아 놓았다. 페이스북은 회사 정책을 위반했다며 워런의 정치 광고를 삭제했다가 즉각 원상 회복시켰다는 내용이었다.

사실 무심코 넘길 수 있는 기사다. LG는 이미 1월에도 전국 262개 아동복지 생활시설에 공기청정기를 기부했다. 기업 사회공헌 사례는 흔하다. 뉴스 가치로 따지면 떨어진다. 페이스북은 개인정보 유출에서 가짜뉴스까지 미디어 단골손님이다. 넘쳐나는 페이스북 소식에 하나일 뿐이다. 눈길을 끈 건 직업적 호기심이었다. 소식이 전해진 이후 여론 반응이 흥미로웠다. LG공기청정기 소식이 전해지자 댓글이 폭증했다. “사랑해요 LG”부터 “모든 제품을 LG로 바꾸겠다”는 내용까지 칭찬 일색이었다. 일부 의도적인 댓글도 있겠지만 자발적으로 LG를 응원하는 분위기였다. 예상은 했지만 이렇게까지 폭발적일 줄은 몰랐다. 재벌에 비판적인 국내 상황을 감안할 때 일부 비아냥거리는 목소리도 있을 법하지만 예상 밖이었다. 아마도 LG는 무상 지원에 필요한 150억원 이상의 성과를 올렸을 것이다.

페이스북은 정반대 사례다. 흔히 여론은 정치인과 정치 기사에 너그럽지 않다. 열성 지지자가 아니면 입을 다무는 게 일반적이다. '기업 해체'까지 운운하는 정치인이라면 뭇매가 십상이다. 게다가 미국은 실리콘밸리 기업에 유독 우호적이다. 모든 예상은 보기 좋게 빗나갔다. 여론이 들고 일어나 정치 광고를 삭제한 건 부당하다고 비판했고, 결국 페이스북은 백기를 들었다.

왜 이런 현상이 일어났을까. 기업 전략을 고민하는 경영자에게는 시사점이 크다. 바로 '기업 이미지' 때문이 아닐까 싶다. 재벌에 비판적인 분위기임에도 LG에 칭찬 댓글이 몰린 건 이미지가 만든 여론이었다. 한때 혁신기업으로 추앙받던 페이스북이 구석에 몰린 사례도 마찬가지다. LG는 구본무 회장 타계 이후 구광모 체제가 성공적으로 연착륙하면서 다른 그룹에 비해 우호 여론이 많았다. 개인정보 유출 사건을 계기로 페이스북은 연일 좋지 않은 여론에 시달렸다. 정치 9단인 워런 의원이 대놓고 페이스북을 비판한 배경도 숨겨진 목소리를 정확하게 읽은 것이다.

이미지는 결국 평판이고 호감이다. 기업이 만든 호불호가 이미지를 결정하고, 이미지는 여론을 만든다. 기술 진화 속도가 빨라지고 소셜 미디어 등 홍보 채널이 늘면서 제품 차별화도 쉽지 않다. 소비자는 제품에 앞서 기업을 먼저 떠올리는 시대다. 매력 있는 사람에게 끌리는 게 인지상정이듯 기업도 다르지 않다. 권력도 이미지에 따라 움직인다. 호감이 낮을수록 규제가 강해지고, 정부 개입이 빨라진다. 민주사회는 법에 근거해 형평성에 따라 합법적으로 작동될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환상일 뿐이다. 그만큼 이미지가 갖는 함의는 무섭다. 문제는 이미지 속성이다. 좋은 이미지는 오랜 시간이 필요하다. 각고의 노력도 뒤따라야 한다. 반대로 무너지는 건 한순간이다. 그래서 어렵다. 이래저래 기업하기 쉽지 않은 세상이다.

취재총괄 부국장 bjkang@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