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라인]'적폐' 포비아

[데스크라인]'적폐' 포비아

'춘래불사춘.' 관가 풍경이다. 관료사회가 긴 동면에서 깨어나지 못하고 있다. 저녁에 소주잔을 기울이는 사람들의 대다수 공통된 의견이다. 이른바 '적폐' 포비아가 여전하다. 영혼 없는 갈대는 흔들리기도 하지만 지금은 미동도 없다. 이쯤 되면 극소수 사례를 일반화시키는 '일반화의 오류'를 넘어선다. 사각의 링 위 권투 선수가 아웃복싱만 하는 셈이다.

결과는 어떤가. 민생, 국민건강과 직결된 현안은 얼마 전 공분을 일으키지 않았는가. 미세먼지 대책은 실효성 논란은 물론 뒷북행정이라는 비판을 받았다. 고어사 수술용 인공혈관 사태도 마찬가지다. 충분한 사전 대처와 협의가 필요한 사안이었다.

중앙부처의 인사 적체와도 관련 있다. 전 정권에서 임명된 고위 관료 및 기관장 가운데 용퇴를 결단하는 자가 보이지 않는다. 현 정부의 핵심은 속앓이만 한다. '코드가 맞는 사람과 일하는 게 당연하지 않은가'라며 울분을 토한다. 누구도 나서서 대놓고 나가 달라고 총대를 메는 사람이 없다. 3년 후 본인이 적폐로 몰릴 수 있다는 학습효과다. 노를 젓는 사공이 없으니 배는 강 위에 떠 있다.

4차 산업혁명 시대를 대처하는 행정에도 아쉬움이 크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와 문화체육관광부 역시 큰 그림이 필요한 정책이 실종됐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다. 주요 나라는 디지털 전환에 따른 미래 청사진과 로드맵을 마련했다. 빛의 속도로 변화는 혁신 성장 시대에 대비한다. 일본은 기술을 일상생활과 사회 문제를 풀기 위해 소사이어티 5.0을 마련했다. 독일은 인더스트리 4.0을 통해 제조업 분야의 초격차 전략을 추구한다. 중국 역시 제조 2025 전략을 추진한다. 우리나라는 어떤 빅 피처가 있는가? 대한민국의 10년 후 미래상을 설계하려는 주체가 보이지 않는다. 정상이 보이지 않는다면 산속에서 헤매기 십상이다.

각 부처의 자율성이 실현돼야 창의 행정이 가능하다. 지금처럼 '효자동의 하명'을 기다리는 시스템은 대수술이 필요하다. 대통령의 질책이 있어야 각 부처 장관이 현장을 찾는 일은 앞으로 없어야 한다. 얼마 전 중폭의 개각이 단행됐다. 분위기 쇄신은 물론 성과를 내야 하는 시기다. 이 때문에 부처 산하기관에 있는 우수한 국장급, 과장급 인재가 일할 수 있는 기회를 줘야 한다. 새로 임명된 7개 부처 장관 가운데 우리나라 먹거리를 책임질 장관 후보자에게는 막중한 임무가 주어졌다. 조동호 과기정통부 장관, 박영선 중기벤처부 장관, 박양우 문화부 장관 후보자는 큰 그림을 그려야 한다. 빅 피처를 토대로 이제는 성과를 낼 수 있도록 독려해야 한다.

적폐 포비아 해소는 현 정부의 성공과 직결된다. 탕평책을 통해 일하는 문화를 조성해야 한다. 관료사회에 대한 정치적 대사면이 필요하다. 환경이 조성되지 않으니 복지부동, 복지안동 문화가 이어진다. 세종청사 주변을 맴도는 이른바 '인공위성 공무원'들 가운데에는 도광양회 공무원이 많다. 이들은 자신을 드러내지 않고 때를 기다리고 있다.

의사결정권자의 결심이 필요하다. 이를 통해 속도감 있게 나아가야 한다. 결정을 미루는 것은 신중해서가 아니다. 스스로 문제를 회피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우리나라 미래를 위해서는 공직 관료사회에 대한 확실한 메시지가 필요하다. 소신으로 일하는 공무원에 대해선 지원하되 문책하지 않는다는 공감대 형성이 필요하다. 정권 수성과 교체를 노리는 여야 정치권도 함께해야 한다.

김원석 성장기업부 데스크 stone201@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