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등의 불 게임장애 질병 등재...게임업계 부담 커진다

게임 장애를 정식 질병으로 등재하는 국제기구 움직임에 따라 게임업계에도 비상이 걸렸다. 오는 5월에 열릴 예정인 세계보건기구(WHO) 총회에서는 게임 장애 정식 질병 안건이 통과될 계획인 것으로 알려졌다. 자칫 수년 동안 잠잠하던 '중독세'가 수면 위로 떠오를 조짐을 보이고 있어 게임업계 입장에서는 쉽지 않은 싸움이 이어질 것으로 전망된다. 내부 데이터 개방과 공적기금 마련에 대응해 다각적인 보완책을 마련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관련기사 4면>

전문가들은 WHO 5월 총회를 기점으로 게임업계 책임론이 부각될 것으로 예상했다. 게임장애 질병화 도입 시기나 유예 조건과 상관없이 관련 연구 명분이 생기면서 게임업계 부담이 크게 늘어날 것으로 예측된다. 이장주 이락디지털문화연구소 소장은 “WHO에서 게임을 질병화하면 국내 게임업계에 중독기금을 걷는 것이 다음 절차”라고 말했다. 올해 정부 국민건강증진부담금 징수액은 지난해에 비해 1109억원 줄어든 2조원대 후반 규모로 추산된다. 금연에 따른 담배 지출이 줄어든 결과다. 이 소장은 “줄어든 국민건강증진기금을 게임업에서 채우려는 시도가 이어질 것”이라고 진단했다. 박능후 보건복지부 장관은 지난해 국정감사에서 “WHO에서 최종적으로 게임 장애를 질병화하는 것으로 확정하면 바로 받아들이겠다”고 답변한 바 있다.

영국 등은 이미 해당 논의가 의회에서 공론화됐다. 외신에 따르면 이달 초 종료된 영국 하원의 디지털·문화·미디어·스포츠(DCMS) 위원회에 증인으로 나선 전문가가 게임업체에 내부 데이터 개방, 공적 연구기금 마련을 촉구했다. 데이비드 젠들 요크세인트존대 교수는 “게임회사가 보유한 데이터뱅크에 접근할 수 없다”면서 “데이터에 접근할 수 있거나 산업계가 연구자와 협력한다면 전리품 상자로 인한 여러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전리품 상자(loot boxes)는 아이템을 무작위로 제공하는 상품이다. 한국 확률형 아이템과 같다. 유럽 일부 연구자는 이 전리품 상자가 도박·중독성이 있다고 지적한다.

증인들은 게임업계와 완전히 배제된 독립적인 게임중독 연구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이를 위한 공적기금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공적기금 재원은 게임업계가 마련해야 한다는 요구가 나왔다. 게임업체가 기금 일부를 책임지되 연구는 독립적으로 하는 방식을 주장한 것이다. 헨리에타 보든존스 국가도박클리닉 소장은 “유해한 물질로 세계를 오염시키지 않도록 게임업계가 제몫을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게임장애 질병등재를 결정하는 총회가 카운트다운에 들어가면서 국내 게임계는 대응책 마련에 나섰다. 위정현 한국게임학회장은 18일 “4월께 게임 질병화 저지를 위한 공동대책위원회를 구성한다”면서 “게임 질병화 논의가 공론화되면 한국 게임 산업은 근간을 잃을 수 있다”고 주장했다. 공동대책위 구성은 업계, 학계, 국회, 시민단체 등으로 확대할 계획이다. 이장주 소장은 “게임 질병화는 결국 수많은 게임 이용자를 잠재적 환자로 만들고 문화 향유권을 박탈할 것”이라고 우려했다.

우리나라는 이미 게임을 대상으로 징벌적 과세를 추진한 전례가 있다. 2013년 국회에 발의된 '중독 예방 관리 및 치료를 위한 법률안'(중독법)과 '인터넷게임중독 치유 지원에 관한 법률안' '인터넷게임중독 예방에 관한 법률안'이 그것이다. 게임과 인터넷을 도박, 알코올, 마약과 같은 중독 물질로 규정하고 관련 기업 매출 가운데 1%를 중독기금으로 징수하는 내용이다. 일명 '중독세'다.

김시소 게임/인터넷 전문기자 siso@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