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교육자치, 책임 '핑퐁'용인가

[기자수첩]교육자치, 책임 '핑퐁'용인가

지난 20일 전북 전주 상산고 학부모 150여명이 검은 마스크를 쓰고 세종시 교육부 청사 앞에서 침묵시위를 벌였다. 전북교육청이 상산고 자립형사립고 폐지를 위해 재지정 점수를 높인 데 항의하기 위해서다.

전북교육청 일인데 왜 세종시 교육부까지 찾아왔을까. 물어 보니 어처구니없는 답이 돌아왔다. 학부모는 “교육청에 항의했더니 '교육부가 자사고 폐지 기조를 세웠고, 그에 맞추려니 점수를 높인 것'이라고 답해 찾아왔다”고 말했다. 그러나 교육부는 자사고 재지정은 교육감 권한이라고 선을 그은 상태다. 교육부와 교육청 간 책임 떠넘기기에 학부모만 '헛수고'한 셈이다.

이런 일은 비일비재하다. 최근 국회신성장포럼에서 에듀테크 기업이 학교 정보통신기술(ICT) 정책이 저마다 다르다고 지적하자 교육부는 “교육 자치로 인해 17개 시·도교육청과 1만1000여개 학교를 설득해야 한다”면서 “교육부가 풀기 어려운 문제”라고 답변했다.

교육부와 교육청 간 온도차도 심하다. 유치원 폐원 사태가 일어나자 교육부는 무관용 원칙으로 강력 대응했지만 지방지원청에서는 학부모에게 유치원을 설득하라는 황당한 대답까지 나왔다. 폐원 사태에 낙담한 학부모는 추운 겨울 거리로 나가 촛불집회를 열었다. 박백범 교육부 차관이 특별감사 등을 약속해 희망이 생기는 듯 했지만 제자리였다. 한두 달이 지나 지원청은 무단폐원이 아니기 때문에 특별감사를 할 수 없다는 결론을 내렸다.

교육 자치가 시작되면서 각 지방 교육청이 유·초·중등 관련 권한을 상당 부분 가졌다. 교육 정책은 단위 학교부터 지방, 중앙에 이르기까지 유기적으로 연결된다. 지역과 학교 상황, 철학에 맞게 교육하는 이상적인 모델이지만 주요 현안 때마다 책임 떠넘기기로 활용되곤 한다.

이제 국가교육위원회까지 출범하면 교육 거버넌스는 더 복잡해진다. 중장기 교육 정책은 국가교육위원회, 유·초·중등 분야는 지역 교육청이 각각 맡는다. 사회부총리로서의 역할과 평생미래교육, 고등교육은 교육부 소관이다. 지금 태도라면 백년지계는커녕 혼란만 커질까 우려된다.

문보경 정책 전문기자 okmun@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