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요논단]한국 제조업의 위기를, 기회로

홍순국 LG전자 소재/생산기술원장 사장
홍순국 LG전자 소재/생산기술원장 사장

우리나라 제조업은 오늘날 대한민국의 경제성장을 이끌어온 주축이며 현재 국내총생산 30%를 차지하고 있다. 제조업 경쟁력이 곧 대한민국 경쟁력이라고 해도 결코 과언이 아니다.

정재계와 학계에서는 각종 언론매체들을 통해 '한국 제조업의 위기'를 연일 강조하고 있다. 하지만, 그러한 수많은 메시지들이 오히려 위기에 대한 '불감증'을 낳고 있는 것은 아닌지 우려스럽다.

필자는 제조현장에 몸담고 있는 한 사람으로서 위기를 재조망하고 위기 극복을 위한 접근 방법을 고민해보고자 한다.

한국 제조업이 중국을 포함한 후발주자들과 선진국들 사이의 '넛크래커' 상황에 놓여있다는 것은 비단 어제 오늘만의 얘기는 아니다. 다만, 필자는 바로 지금이 우리가 처한 위기에서 벗어날 수 있는 '골든 아워'이며 이 시기를 놓쳐서는 안 된다는 것을 강조하고 싶다.

많은 국내 전문가들이 언급하는 바와 같이 제조업이 살아나지 않으면 우리 경제도 엄청난 위기에 직면할 수 밖에 없다.

한국 제조업의 부가가치율은 약 25% 수준으로 미국, 일본, 독일 등을 포함한 선진국이나 중국의 수치보다도 현저히 낮다. 이는 선진국과 기술력 차이를 여전히 극복하지 못하고 있으며 중국과 원가경쟁력 차이도 좁히지 못하는 상황으로 해석된다. 특히 미국, 독일 등 선진국에서도 제조 경쟁력 강화를 경제 회복 및 성장의 핵심으로 바라보고 있고 기존에는 생산기지 역할에 머물렀던 중국을 포함한 아시아 국가들이 산업 자립화를 추구하면서 그 위협은 거세지고 있다.

더군다나 중국은 과거 LCD 중심에서 현재 한국 경제성장을 견인하는 핵심 산업인 반도체, OLED, 2차 전지를 대상으로 본격적인 설비 투자와 인재 확보에 나서면서 우리를 더욱 위협하고 있다.

또 한국 제조업 재고비율이 외환위기 이후 고점을 찍고 전국 29개 산업단지 중 23곳의 가동률이 하락하는 현 상황을 바라보면 지금의 위기가 결코 일시적인 현상이 아님을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위기를 제대로 인지하는 것 자체가 기회라고 하지 않았던가. 우리에게는 역사적으로도 위기 상황일수록 강하게 결집하고 수많은 난관들을 똘똘 뭉쳐 헤쳐온 민족적 저력이 있다. 바로 지금이 정부, 산업계, 학계 모두가 현재 제조업이 처한 위기를 제대로 인지하고 각자의 역량을 하나로 모을 때다.

현재 범정부 차원에서 추진 중인 스마트공장은 2017년에 약 4900건이 도입돼 2014년보다 16배 이상으로 빠르게 늘어나고 있다. 다만 아쉬운 부분은 스마트공장을 도입한 업체들 중 실질적인 적용 효과를 얻지 못하는 곳이 일부 있고 여전히 적지 않은 수의 업체들이 IT시스템을 구축해 얻는 효과보다 비용 부담을 더 크게 느끼고 있다는 것이다.

필자가 최근 방문한 현장들을 살펴봤을 때, IT시스템을 구축해 공장운영 효율을 높이기 이전에 현장의 '기본 다지기'부터 충실히 해나가는 것이 시급하다. 대부분의 제조 현장이 표준화와 자동화 수준이 낮고 일부 현장은 설비 관리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아 정지시간이 가동시간보다 더 긴 경우도 있었다. 부품 하나가 만들어지기 위해 안산, 포항, 창원 등 전국에 산재한 업체를 여러 번 거쳐야 하는 상황도 벌어지고 있었다. 대기업보다 제조업 부가가치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고 있는 중소기업으로 갈수록 더욱 심각했다.

튼튼한 아날로그 즉, 생산현장의 기본이 없는 디지털로의 전환은 사상누각과도 같다. IT시스템 구축 이전에 장기적인 안목을 가지고 현장의 '기본 다지기'부터 충실하게 추진해나가야 하는 것은 아닌지 짚어 봐야 할 대목이다.

한해 수천 명의 우리나라 제조업 종사자들이 도요타 생산방식을 벤치마킹하기 위해 일본을 방문하고 최근에는 4차 산업혁명 동향을 탐색하기 위해 독일을 비롯한 유럽, 미국 등을 분주히 찾고 있다. 그렇지만 우리나라 제조업의 근본적인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서는 남들이 만들어 놓은 도구들을 피상적으로 따라하면서 '반짝 개선'의 요행을 바래서는 안 될 것이다.

일례로 스마트팩토리라는 단어가 화두가 되어 최첨단 ICT 기술 도입·적용을 앞다투고 있는 요즘, 도요타의 생산방식 진화는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있다.

도요타에게는 70년이 넘는 시간 동안 꾸준하게 제조 현장을 개선해나가는 개선 문화와 사상(DNA)이 그들의 몸과 마음속에 체화돼 있다. 이를 바탕으로 낭비제거, JIT(just in time), 자동화 등으로 널리 알려진 도요타의 현장 기본 지키기는 물론 정보화의 모태인 간판방식 등 남따라하기가 아닌 그들만의 개선 도구와 방법들이 탄탄하게 그리고 단계적으로 진화해왔다.

확실한 아날로그가 오래전부터 탄탄하게 만들어져 왔고, 이를 토대로 필요한 곳에 필요한 만큼의 디지털화가 이뤄지는 도요타에게 스마트팩토리는 새로운 인공지능 기술의 도입이 아니라 지금까지 이어오는 도요타 생산방식 구축의 여정이 아닐까.

물론 도요타 사례가 우리 제조업에 맞는 유일한 정답은 아니다. 지금 필요한 것은 업의 특성을 고려한 우리만의 접근방식을 찾는 것이다.

앞으로 필자는 본 논단을 통해 '제조경쟁력 강화를 위한 바람직한 접근방향'을 포함해 한국 제조업 위기를 기회로 만들어보기 위한 작은 제언들을 하나씩 해보고자 한다.

홍순국 LG전자 소재/생산기술원장 사장 mfginnovation@lg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