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출연연 R&R 재정립 과정 유감

정부가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산하 25개 정부출연연구소 가운데 다음달 중 연구과제중심제도(PBS) 개선안을 확정하는 8개 출연연에만 내년도 예산을 우선 반영해주기로 했다. 나머지 출연연에는 내년 예선을 동결하는 등 불이익을 준다는 방침이다. 정부가 제시한 PBS 개선 해법인 셈이다.

지난해부터 추진해 온 출연연 세부 역할과 책임(R&R) 재정립 작업에 적극 참여하는 출연연부터 문제를 풀어나가겠다는 의지로 읽힌다. 그만큼 출연연 대응이 마땅치 않은 모양이다.

이 같은 정부의 풀이 과정에 불만이 많다. 오랜 기간 PBS에 적응하느라 구축해 놓은 모든 것을 단기간에 정리하기는 어렵다는 것이 출연연 기본 입장이다. PBS 과제를 여러 부처에서 받다보니 이해관계가 복잡하게 얽혀있어 섣불리 움직이면 손해라는 계산이 저변에 깔려있다. 정부가 먼저 부처 간 이해관계부터 정리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출연연 R&R 재정립 역할은 정부 몫이다. 출연연은 국가가 필요로 하는 연구를 맡기기 위해 국민 세금을 투입해 설립한 기관이다. 국가가 연구과제를 정해서 맡기면 출연연은 국가가 원하는 연구 결과물을 내놓는 것이 제대로 된 수순이다.

그런데, 이번 PBS 개선작업은 출연연 스스로 무엇을 연구할 것인지를 정해서 가져오면 정부가 이를 심사해 확정해 주는 형태다. 국가과학기술연구회(NST)가 대강의 방향을 설정해주기는 했지만 지나치게 행정편의적인 발상이다. 어렵고 귀찮은 일을 출연연에 떠넘기고는 빨리 가져오지 않으면 원하는 예산을 주지 않겠노라 으름장을 놓는 일은 지양해야 한다.

지금처럼 출연연 존재이유가 희미해진 데는 정부 책임이 크다. 특히 PBS는 다수 출연연이 중복 연구에 나설 수 밖에 없게 된 가장 큰 원인이다. PBS 개선작업은 출연연이 제자리를 찾아 본연의 임무를 수행하도록 정비하자는 취지일 것이다. 그렇다면 정부가 책임을 지고 먼저 해법을 제시해야 한다. 존치 이유가 없는 기관은 과감히 없애는 결단도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