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T단상]5G, 새로운 시대의 서막

[ET단상]5G, 새로운 시대의 서막

“아마존도 망할 수 있다.” 지난해 말 아마존 설립자이자 최고경영자(CEO)인 제프 베이조스가 회사 직원과의 모임 자리에서 한 말이다. 미국에서 125년 역사를 넘기며 전통의 유통 강자로 군림해 온 시어스백화점의 갑작스러운 파산이 주는 교훈을 묻는 직원 질문에 따른 답이었다. 시가총액 1조달러 이상, 직원 60만명이 넘는 공룡 기업 대표가 던진 이 말은 우리 시대의 어떤 기업이라 하더라도 빠르게 변화하는 기술 경향과 소비자 요구에 적시 반응을 해야 살아남을 수 있다는 긴장감을 보여 준다. 존 체임버스 전 시스코시스템스 회장은 지난 1월 역대 최대 규모로 치러진 CES 2019 토크 행사에서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기업이 기술 기업으로 돼야 하며, 모든 제품은 기술 제품이 돼야 한다는 명제를 확인했다”고 말했다. 또 요시다 겐이치로 소니 CEO 역시 CES에서 “회사 주력 비즈니스를 영화, 음악 등 콘텐츠 서비스로 이동하겠다”고 발표, 전통 가전 기업에서 콘텐츠 파워 기업으로의 변모를 선언했다.

내연기관 자동차 기업으로 성장한 토요타는 5세대(5G) 이동통신 환경에서 사물 인식과 머신러닝 기술로 무장한 레벨4 수준의 완전자율주행 실험 자동차를 내놓았다. CES에서 보리라고 예상하지도 못한 존슨앤드존슨, 로레알, P&G 같은 생활소비용품 기업이 대거 참가해 '기술기업'으로의 변신을 노린 점도 주목해야 한다.

시장과 글로벌 기업의 변화 드라이브 배경에는 5G 도래가 자리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미국과 중국 간 무역 분쟁 이면에 5G 기술 패권이 놓여 있다는 사실을 지적해 왔다. 5G 기술은 28㎓의 초고역대 주파수를 사용하며, 다운로드 최고 속도는 20Gbps로 반경 1㎢ 내 100만개의 디바이스와 동시 접속이 가능한 네트워크다. 기기끼리 응답 시간 1000분의 1초로써 사람이 느끼는 지연성이 거의 없는 속도이며, '사람 간' 연결이 주이던 통신이 '사물 간 연결'로 확장된 새로운 시대의 도래를 의미한다.

우리가 오는 4월 초로 예정된 세계 첫 상용 서비스를 앞두고 대부분의 기술 선진국들이 2022년까지 5G 서비스 상용화를 계획하고 있다. 변화는 단순한 통신 인프라 레벨 업뿐만 아니라 사물인터넷(IoT), 증강현실(AR)·가상현실(VR)과 인공지능(AI), 자율주행, 스마트홈과 스마트팩토리, 나아가 스마트시티 등 미래 기술 시장의 비약 확대 및 융합서비스 현실화와 연결된다.

시장 조사기관 IHS마켓은 2035년까지 세계 5G 관련 생산 규모만 12조3000억달러가 넘어서고 3조5000억달러의 가치사슬 생산 유발액, 2200만개 신규 일자리를 창출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5G 기술 선점과 파생 산업군 제품 상용화는 미래 기술 패권이 걸린 생존 문제라는 얘기다. 5G가 만드는 산업 간 가치사슬이 다양한 영역에서 기술 융합과 산업 융합을 만들고, 사물 간 통신 시대에 걸맞은 새로운 메가 시장을 만들 것이기 때문이다.

중국 고전 '장자'의 추수편에 '정저지와'가 나온다. '우물 안 개구리'라는 표현이 더 익숙하지만 자기가 보는 세상, 자기가 겪은 경험이 전부인 줄 아는 사람을 일컫는다. 적어도 정보통신기술(ICT) 비즈니스 영역에서는 한 가지 기술, 한 우물만 파는 시대는 지났다. AI가 사람 표정과 행동을 머신러닝으로 읽고 정보를 처리하는 세상이다. 사물 정보 처리가 인간 인지 영역 밖에서 순식간에 이뤄지는 세상에 부응하는 새로운 비즈니스와 서비스를 준비해야 한다. 트렌드를 읽고 이해하는 분야에 있는 사람이라면 최대한 새로운 변화에 스스로를 노출시켜야 하고, 기술 변화를 목도해야 한다.

미국 CES가 전부는 아니다. ICT 강국 대한민국에서도 4월 '월드IT쇼(WIS) 2019'가 기다리고 있다. 국내외 500여개 기업이 참가한다. 해외 시장을 노리는 기업이라면 전시회는 물론 수출상담회, 콘퍼런스 등에서 좋은 비즈니스 기회를 만날 수 있다. 경기 둔화를 우려하는 목소리도 있지만 5G 상용화라는 새 시대가 주는 기회를 놓쳐서는 안 된다. AI와 IoT는 물론 AR·VR 등 다양한 디지털 콘텐츠로 무장한 기업이 5G라는 새로운 고속도로 위를 달려 나갈 것이기 때문이다. 길은 원래 있던 것이 아니라 누군가에 의해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겠는가.

이원석 연세대 컴퓨터과학과 교수 leewo@yonsei.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