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미래를 위한 국민신탁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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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땅은 선조에게서 물려받은 것이 아니라 우리 후손에게 빌린 것'이라는 북미 원주민의 격언이 있다. 우리가 누리고 있는 자연 환경을 지속 가능하게 보전해 미래 세대도 아름다운 환경에서 살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뜻이다.

박천규 환경부 차관.
<박천규 환경부 차관.>

그러나 그동안 우리나라는 급속한 경제 성장에 따른 마구잡이 개발이 있었고, 자연 환경 훼손도 뒤따랐다. 1989년에 92종이던 멸종위기 야생동물은 2012년 246종, 2017년 267종으로 약 3배 늘어났다. 다양한 생명체 보고라는 습지도 최근 3년 동안 165곳이 없어지거나 훼손됐다.

19세기 후반에 영국도 급격한 산업화가 진행돼 자연 환경과 역사 기념물 훼손이 사회 문제로 대두됐다. 무분별한 개발과 산업화가 초래한 문제에 대응하기 위해 변호사 로버트 헌터, 사회활동가 옥타비아 힐 등은 1895년 국민신탁(내셔널 트러스트) 협회를 설립했다. 협회는 민간 차원의 모금 활동이나 기부·증여를 통해 보전 가치가 있는 자연 환경 자산과 문화유산을 취득한 후 이를 보전·관리하는 국민신탁운동을 전개했다.

이후 영국 의회는 1907년에 세계 최초로 국민신탁법을 제정, '아름답거나 역사 가치가 있는 중요한 토지(자연)와 건물을 영구히 보존할 것과 취득한 목적물의 양도불능성'을 선언했다. 국민신탁운동을 법제화하고, 보전해야 하는 자연(토지)을 항구히 지킬 수 있는 권한을 부여한 것이다.

영국의 국민신탁운동은 지속 발전, 현재 관련 단체 회원이 400만명에 이른다. 해안선, 녹지, 역사 건물 등을 포함해 전 국토의 약 2.7%가 신탁지에 해당한다. 영국의 국민신탁운동은 환경 당국과 더불어 국토 보전 측면에서 큰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1990년대 후반에 시민사회단체 중심으로 '땅 1평 사기' 같은 국민신탁운동이 추진됐다. 이후 멸종위기종인 매화마름의 자생지 보전과 같은 성공 사례를 이뤄 냈다.

매화마름은 1960년대까지만 해도 서울 영등포 일대에서 채집될 정도로 흔하던 미나리아재비과 수생식물이었다. 그러나 개발 사업 등으로 자생지와 개체수가 줄면서 1998년 2월 멸종위기종으로 지정됐다. 1998년 5월 인천시 강화군 길상면 일대 논에서 자생하는 매화마름이 발견됐지만 당시 경지 정리가 예정돼 자생지가 사라질 위기에 처해 있었다. 이를 지키기 위해 시민모금을 전개해서 2002년에 자생지 3009㎡ 가운데 2640㎡를 매입했고, 잔여 토지인 369㎡를 소유주로부터 기증받아 이를 보전하고 관리할 수 있게 됐다. 이곳 매화마름 군락은 2008년 10월 단일 논으로는 세계 최초로 국제 사회에서 보존 가치가 높은 습지인 '람사르 습지'로 지정받았다.

정부는 민간의 국민신탁운동을 지원하기 위해 2006년 3월 영국에 이어 세계에서 두 번째로 '문화유산과 자연환경자산에 관한 국민신탁법'을 제정했다. 국민신탁 보전 재산의 양도불가능성 등을 법률로 명시해 국민신탁운동의 안정성을 더하고 있다.

국민신탁법인·단체 등의 적극 활동, 국민신탁법 제정 등에 따라 국민신탁법인이 약 120만㎡ 이상의 토지를 보전·관리하고 다양한 참여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등 소기의 성과를 거두고 있다. 그러나 이를 사회 전반으로 확산시켜야 하는 숙제를 안고 있는 것도 현실이다. 자연을 보전하고 이를 지속 가능할 수 있도록 관리해야 하는 정부의 책임이 무엇보다 무겁고, 대응 방안도 적극 마련해야 한다.

이에 더해 국민의 자발 노력을 통해 자연 환경을 지켜 나가는 실천 행동인 국민신탁운동도 하나의 자연 환경 보전 방안이 될 수 있을 것이다. 국민이 국민신탁운동에 관심을 기울여 주고 든든한 후원자가 돼 주길 바란다. 미래 세대에게 물려줘야 하는 자연 환경이 훼손되는 것을 막는 작은 울타리를 쳐 주길 부탁한다.

박천규 환경부 차관 ckpark91@korea.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