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분석]한국, 오픈뱅킹 시대 개막...숨은 주역들

한국도 핀테크기업이 은행이 보유한 결제망을 이용하는 오픈뱅킹 시대가 개막했다. 금융당국이 최근 발표한 금융결제 인프라 혁신 방안 핵심이 바로 오픈뱅킹 도입이다.

오픈뱅킹은 4차 산업 이음새로 떠오른 블록체인, 빅데이터, 인공지능(AI) 기술도 금융과 결합해 하나의 사업 전반을 이끌게 된다. 이를 구현하기 위한 플랫폼 필요한데, 이게 바로 오픈 응용프로그램 인터페이스(API)다. 이를 기반으로 수많은 기업이 자체 투자와 개발이 아닌 금융사가 보유한 내재 기술을 마음껏 활용할 수 있다.

오픈API가 금융의 새로운 혁신을 가져올 아이콘으로 떠오른 이유다. 이를 보수적인 금융에 도입하기까지는 많은 난관을 넘어야 했다. 새로운 금융혁신시대를 가져올 오픈API의 한국 도입과정을 들여다봤다.

[이슈분석]한국, 오픈뱅킹 시대 개막...숨은 주역들

◇오픈뱅킹의 시작

한국 오픈뱅킹의 첫 시도는 2015년 4월로 거슬러 올라간다. 은행에 금융결제망을 열어야 한다는 당시로서는 파격적인 제안이 외부에서 들어왔다. 윤완수 웹케시 대표가 시중은행을 돌아다니며 오픈 API를 처음 제안한 것이다.

웹케시는 2004년 기업용 핀테크 서비스 시장에 눈을 떴다. 기존 금융 서비스로는 기업이 효율적 자금관리와 경영관리를 하기에는 역부족이었다. 기업들은 기존 금융 서비스 환경에 익숙해 어떤 서비스가 어떤 가치를 제공해 줄 수 있는지도 인지하지 못하던 시기였다.

웹케시는 당시 은행, 증권사, 카드사의 금융정보와 국세청 휴·폐업정보 등 기본적인 정보를 통합, 제공하는 사업을 시작했다. 기업 경영관리와 자금관리에 도움을 주는 1단계 기업용 핀테크 서비스를 선보였다.

기업이 B2B 핀테크 서비스에 눈을 뜨고 관심이 높아지면서 보다 다양한 정보를 요구하기 시작했다. 기존 금융기관이 제공하는 펌뱅킹과 밴(VAN)사에서 제공하는 정보범위를 넘어서는 요구가 시작된 것이다. 한발 더 나아가 이런 정보를 기업 내부 ERP시스템과 연결해 업무 활용을 극대화 하고자 하는 기업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B2B 핀테크 서비스가 본격 시작된 것이다. 이런 시점에 윤 대표가 국내 최초 오픈뱅킹 도입을 은행에 제안한 것이다.

하지만 막대한 펌뱅킹 수수료를 받고 있던 은행 반응은 냉담했다.

윤 대표는 “금융기관 정보와 서비스가 오픈되는 것은 막을 수 없는 커다란 흐름이라고 생각했다”며 “오픈뱅킹으로 금융과 기업, 금융과 서비스가 다양하게 연결된다면 엄청난 가치를 우리 사회에 제공해 줄 것으로 확신했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처음 냉담한 반응을 보이던 은행들도 해외사례 등 금융의 변화 움직임에 서서히 반응하기 시작하며 오픈API 검토가 시작됐다.

물론 보안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도 컸다. 이를 해소하기 위해 석창규 웹케시그룹 회장을 중심으로 현재 금융API에 적용되는 핵심 보안인증 '핀 어카운트(Fin-Account)'를 탄생시켰다.

핀 어카운트란 핀테크의 '핀(Fin)'과 '어카운트(은행계좌)' 합성어로 고객 계좌번호 수집 및 보관을 못하는 핀테크 기업이 고객 실계좌번호 대신 가상번호를 부여받아 안전하게 금융API를 이용할 수 있는 보안인증 기술이다.

당시 NH농협은행이 국내 최초로 핀테크 기업을 위한 금융 오픈API 플랫폼을 준비하던 시점이다. 석 회장이 핀 어카운트를 직접 기획하고, 웹케시 산하에 핀테크연구센터를 만들어 약 4개월 개발기간을 거쳐 오픈 API보안인증 체계가 완성됐다.

◇막대한 수수료 이윤 포기한 은행

웹케시 오픈 API플랫폼 제안에 이를 선뜻 수락한 은행이 있을 리 만무했다. 당시만 해도 시중은행은 펌뱅킹 수수료로 수백억원을 벌었다.

오픈API를 도입할 이유가 없었다. 그러나 농협은행만 달리 반응했다. 당시 스마트금융부장이던 손병환 농협금융지주 사업전략본부 부문장이 웹케시 제안을 수락, 오픈API 도입을 추진했다.

관련 법규와 사회 인식 등 여러 걸림돌이 있고, 경쟁은행의 비판어린 시선을 받았지만 오픈API를 도입하겠다며 당시 김주하 농협은행장을 설득했다. 결국 내부 시스템 연계작업을 거쳐 2015년 12월, 65개의 오픈 API를 국내 금융권 최초로 선보였다. API를 통해 금융서비스와 정보를 제공할 수 있는 준비를 마쳤다.

그러나 계좌잔액, 거래내역 등 금융정보를 제공하는 API는 제공할 수 없었다. 앞에서 언급한 걸림돌이 서비스 제공을 막고 있는 상황이 해소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당시 금융실명제법에서는 고객의 금융거래정보를 제3자에게 제공할 때 서면 동의를 받도록 규정하고 있었다.

금융기관이 핀테크 서비스 기업에게 API로 정보를 제공하기 위해서는 은행지점을 방문해 정보제공동의서를 제출해야 했다. 통상적 해석으로는 API를 호출할 때마다 매번 은행지점을 방문, 동의서를 제출해야 하는 것이다.

그러다 2015년 12월 금융위원회에서 금융거래정보에 대한 정보제공 동의에 관해 '건별 동의가 아닌 포괄적 동의가 가능하며, 서면상의 동의는 전자서명을 포함한다는 내용의 유권해석을 제공하겠다'는 발표를 이끌어냈다. 오픈API로 금융정보를 제공할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러나 농협만의 오픈API구축으론 핀테크 기업 육성에 한계가 있었다. 다른 은행의 참여가 절실했다. 금융권 공동 오픈API가 필요했는데, 이를 이근주 한국핀테크산업협회 사무국장이 제안하고 나섰다. 당시 기업은행 스마트금융부장으로 재직하던 이 국장은 금융감독원에서 개최한 핀테크 원탁회의에서 핀테크산업 활성화 전제조건으로 오픈API, 특히 금융권 공동 오픈API 구축을 처음 제안했다. 금융권 공동 오픈API 플랫폼 구축으로 핀테크기업의 금융사 연계 편의성 제고에 정부가 앞장서야 한다는 의견을 제시했다.

이후 김상민 의원실 조찬 간담회에 참석한 모 부처 고위공무원에게 “말이 쉽지 은행권 공동 오픈API 플랫폼 구축이 현실적으로 가능하겠냐”는 핀잔을 받기도 했다. 하지만 당시 도규상 금융위 금융정책국장이 핀테크 혁신을 위해 금융권 공동 오픈API 도입 추진에 힘을 실었다. 결국 금융혁신을 통한 일자리 창출과 국가 경쟁력 확보를 위해 핀테크 산업 활성화 방안을 찾던 금융위는 은행은 금융결제원을 통해, 증권사는 코스콤을 통해 금융권 공동 오픈API 플랫폼을 구축했다. 필요한 시점에 프론티어 정신을 가진 인사들이 2019년 '금융결제 인프라 혁신 방안'을 탄생시킨 셈이다.

◇대한민국 금융결제망을 바꾸다

지난 2월 금융위는 대한민국 금융결제 인프라 혁신방안을 발표한다. 기존 펌뱅킹 체계를 오픈API 플랫폼으로 전환하는 혁신 프로젝트다.

그간 금융권이 오픈API 서비스를 하고 있지만 대중적으로 확대되지는 못했다. 막대한 펌뱅킹 수수료 체계를 바꾸지 못했기 때문이다. 지리한 논의 끝에 금융위를 중심으로 은행간 전체 합의를 이뤄냈다. 마침내 본격적인 오픈뱅킹 시대가 열린 것이다.

권대영 금융위 금융혁신기획단장은 “고속도로를 달리는데 통행료를 기업별로 달리 받는 게 말이 되냐”며 은행의 펌뱅킹 수수료 체계 전환을 추진했다.

물론 금융권 반발도 심했다. 특정 기업 밀어주기 아니냐는 은행권 비판에도 직면했다. 그러나 각 금융지주 회장까지 설득하며 마침내 오픈뱅킹 시대를 열었다.

소수의 공적이라기에는 무리가 있지만, 어쨌든 수많은 난관을 거쳐 우리나라도 오픈뱅킹 시대를 맞았고, 오픈뱅킹은 한국 금융 인프라를 송두리째 바꾸는 혁신을 가져오게 될 것이다.

길재식 금융산업 전문기자 osolgil@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