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바이오산업 육성, '디테일'이 필요하다

SW융합산업부 정용철
SW융합산업부 정용철

한 바이오 벤처기업은 사무실을 이전하면서 허가 받는 데만 4개월 이상 걸렸다. 업종 특성상 구비한 작은 연구실 때문이었다. 공조시설이나 폐기물 관리 등 허가 요건이 많았다. 더 큰 문제는 해당 업무를 담당하는 기관이나 과가 명확하지 않아서 서로 미루기 바빴다. 바이오가 시간과의 싸움이라는 이야기는 많이 들었지만 사무실 허가부터 진을 다 빼는 통에 앞이 막막했다.

최근 바이오 산업 성장에 가속도가 붙으면서 바이오 벤처 창업도 활황세를 보이고 있다. 2015~2017년에 창업한 바이오 벤처 수는 1000개가 넘었다. 2000년 초의 '바이오 벤처 붐'을 넘어섰다. 바이오 분야 벤처투자 역시 사상 최대치를 넘은 데 이어 전 산업 가운데에서도 가장 많은 돈이 모였다.

바이오 벤처 붐 속에서 업계가 체감하는 가장 큰 어려움은 예상보다 세세한 데 있다. 사무실, 연구실 허가나 회계·재무 등 행정 등이 대표적이다. 기업 운영 경험이 짧은 탓도 있지만 적은 인원과 예산으로 기업을 꾸리다 보니 이런 잡다한 영역에서 의외로 많은 자원을 낭비한다.

정부가 지원하는 벤처 육성 정책도 이용하고 싶지만 방법을 모른다. 문재인 정부는 중소벤처기업부까지 만들었고, 최근에는 '제2 벤처 붐'을 일으키겠다고 한다. 수많은 정부 지원책이 있는데 정보가 부족하고, 신청이나 접수 창구도 제각각이라며 한숨을 내쉰다.

벤처기업을 넘어 대형 제약사나 바이오의약품 기업도 비슷한 목소리를 낸다. 의약품 연구, 허가 신청 시 겪는 잡다한 불편과 비효율적 행정 업무 개선 요구가 높다. 복잡한 서류 양식, 담당자와 직접 마주보고 설명해야 하는 관행 등이 대표적이다.

정부가 바뀔 때마다 바이오 산업 육성책이 나온다. 박근혜 정부는 보건의료산업육성종합전략을 발표했다. 문재인 정부는 이르면 이달 대통령 지시로 바이오산업육성 액션플랜을 내놓는다. 내용은 정부마다 비슷하다. 규제 개선과 연구개발(R&D)에 초점을 맞춘다.

산업계는 해마다 규제 개선에 기대를 걸지만 사회적 합의와 신뢰성 확보가 필요하다는 이유로 차일피일 미뤄진다. 큰 규제 개선만 바라보지 말고 이제는 작은 규제나 불편부터 해소하자는 목소리가 나온다. 실망감 때문인지 현실을 자각한 이유인지 모르겠다. 산업계가 당장 필요한 것은 작은 '디테일'에 있다.

정용철 의료/바이오 전문기자 jungyc@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