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ESS, '전화위복(轉火爲福)' 계기 만들어야

본지는 최근 '화재 원인 규명 지연…ESS 산업 동력 상실' 제하의 심층 취재를 통해 잇따른 화재 사고로 멈춰선 국내 에너지저장장치(ESS) 생태계를 긴급 점검했다.

기자는 ESS 생태계에 속한 다양한 이해관계자들을 만나 이야기를 들었다. 보도가 나간 이후 많은 피드백도 이어졌다. 무엇보다 화재 원인 조사에 예상보다 많은 시간이 걸리면서 생태계가 동력을 잃지는 않을까 우려하는 시각이 많았다. 철저한 화재 원인 조사와 별개로 유망한 신산업의 성장 불씨를 꺼뜨려선 안 된다는 목소리도 컸다.

전 세계의 재생에너지 확대는 거스를 수 없는 흐름이며, 재생에너지 발전과 ESS는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다. 우리나라는 지난해 ESS용 배터리 출하량 47%를 차지한 선도 국가다. ESS 보급 속도도 세계에서 가장 빠르다. 관련 부품과 시공 기술, 운영 노하우 측면에서 세계 최고 수준의 경쟁력을 확보했다는 의미다.

본지 보도 이후 정부는 설명자료를 내고 “ESS 사고 원인을 최대한 조속하게 규명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면서 “가동 중단 사업장 지원, 안전성 제고를 위한 제도 개선 등 ESS 화재 사고 종합대책도 함께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정책은 타이밍이다. 조사 결과 발표가 예상보다 늦어지는 것은 실증에 많은 시간이 걸리기 때문이다. 지난달 민·관 합동 ESS 화재사고 원인조사위원회가 비공개 발표한 중간조사 결과는 사실상 모든 화재 사고의 원인이 되는 경우의 수를 담고 있다. 이에 따라 필요하다면 생태계 조기 복원을 위한 응급 처방이 먼저 나올 수도 있다.

많은 국가가 이제 막 ESS를 도입하고 표준을 제정하고 있다. 보급이 늘어날수록 예상치 못한 변수는 언제나 발생한다. 우리나라가 이번 화재 사고를 계기로 선제적인 화재 수습 경험과 안전 대책을 만들면 후발 국가 벤치마킹 대상이 될 수도 있다. 이번 화재 사고와 후속 대책에 관심이 쏠리는 이유다.

정부 발표 이후 리스크가 해소되면 그동안 미뤄진 수주 문의가 다시 재개될 것으로 기대된다. 수출과 기술 해외 전수도 급물살을 탈 수 있다. 이번 ESS 화재 사고를 세계 최고 수준의 ESS 안전성과 기술력을 확보하는 '전화위복(轉火爲福)'의 계기로 삼기를 기대한다.

정현정 배터리/부품 전문기자 iam@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