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T단상]기업의 혁신은 어디로 향하는가?

임훈 후지필름 일렉트로닉 이미징 코리아 사장
임훈 후지필름 일렉트로닉 이미징 코리아 사장

혁신의 사전 의미를 굳이 언급하지 않더라도 혁신이란 단어에서 오는 설렘과 긴장감은 기업 발전을 견인하는 단어로 손색이 없다. 그러나 모든 기업이 하나같이 성장과 혁신을 강조함에도 끊임없이 진화를 거듭하는 혁신 과정을 통해 오랜 기간 고객으로부터 사랑받는 장수 기업은 그리 많지 않은 것이 사실이다.

1955년 경제 잡지 포천이 선정한 500대 기업 가운데 현재까지 수명을 유지하고 있는 기업은 12%인 60여개에 불과하다. 국제신용평가기관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에 따르면 세계 500대 기업 평균 수명이 1935년 90년에서 1970년 30년을 거쳐 2015년에는 15년으로 급속히 줄어들었다.

이런 상황 속에서 우리나라에도 두산을 비롯한 9개 회사가 창업한 지 100년이 넘은 장수 기업이 됐다. 중소벤처기업부에 따르면 일본에는 이시카와현에 있는 전통 여관인 호시료칸을 비롯해 창업한 지 1000년이 넘는 회사가 7개에 이른다고 한다. 이런 장수 기업에 있는 비밀은 과연 무엇일까. 그리고 그 비밀은 어디서 시작해 어디로 향하고 있는 걸까.

멈추지 않고 성장 가도를 달릴 것 같던 필름 매출은 2000년을 절정으로 매년 20~30% 감소됐다. 그로부터 10년 후 90%의 필름 매출은 소리 없이 사라지게 됐다. 그 당시 디지털카메라 탄생과 함께 디지털 세상 진입은 누구나가 예견할 수 있는 불가항력의 변화였다.

그럼에도 누군가는 이 변화를 위기로 받아들였고, 또 누군가는 변화의 파고를 '아직 우리에게 많은 시간이 남아 있겠지'라며 안이하게 바라봤을 것이다. 2000년대 초반 후지필름 전체 매출에서 60%를 차지하던 필름 매출은 이제 1% 비중도 되지 않는다. 나머지 99% 매출은 다른 사업 분야에서 이뤄지고 있다.

후지필름을 한마디로 정의하면 '기술 지향 회사'라 할 수 있다. 그러나 그 기술 지향의 정점에는 설립 후 85년 동안 쌓아 온 화학 합성 기술의 절정체인 필름 기술이 있다. 후지필름에서 화장품을 만들고 의약품을 개발하고 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사진 필름의 주된 원료는 콜라겐이고, 사람 피부 역시 70%가 콜라겐으로 구성돼 있다. 사람의 피부가 노화되는 현상은 산화 작용으로 일어난다. 이는 필름의 빛바램 현상 원인이기도 하다. 사진 빛바램 현상 방지 기술을 노화 방지인 안티에이징 화장품에 적용하여 탄생한 것이 후지필름 화장품인 '아스타리프트'다.

2008년 3월 후지필름은 중견 제약회사인 후지화학공업을 인수했다. 의약품 개발에는 어떤 병에 효과가 있는 화합물을 찾는 경쟁과 이를 어떻게 하면 인체에 잘 흡수시킬 것인가에 대한 기술 혁신이 요구된다. 후지필름이 보유하고 있는 나노테크놀로지 기술은 의약품에 적용됐다. 2014년 서아프리카를 강타한 에볼라 바이러스의 유일한 치료제인 '아비간'도 후지필름이 개발했다.

기업 철학은 '우리는 왜 존재하는가' 하는 물음에서 출발해야 한다. '우리는 과연 왜 존재하며, 고객과 사회에 어떤 기여를 할 수 있는가.' 이것이 곧 기업 철학이 돼야 한다.

기술은 사람을 향해야 한다. 후지필름의 기술도 그렇다. 피부 노화를 방지해서 젊음을 유지하게 해 주고, 체내에 잘 스며드는 의약품을 통해 건강을 전달해 준다. 카메라를 통해 추억과 즐거움을 준다. 기업의 모든 기술이 지향해야 할 최종 목적지는 결국 사람이다.

임훈 후지필름 일렉트로닉 이미징 코리아 사장 hun.lim@fujifil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