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산책]여전히 갈 길 먼 정부 R&D 예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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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산책]여전히 갈 길 먼 정부 R&D 예산

우리나라의 눈부신 경제 발전 중심에 과학기술이 있다는 점에는 이견이 없을 것이다. 일등공신은 연구개발(R&D) 현장에서 밤낮 없이 연구에 매진한 연구자라 하겠지만 이를 뒷받침하기 위해 국내외 경제·사회 흐름을 읽고 미래를 전망해서 R&D에 지속 투자해 온 정부의 노력 또한 간과해서는 안 된다.

오늘날 현실은 과거의 영광처럼 녹록하지 않다. 후발국의 기술 추격 속도는 날로 빨라지고 있다. 출산율 감소와 저성장 고착화 등 우리 내부 문제도 심각하다. 초지능과 초연결로 대표되는 4차 산업혁명 시대에 인공지능(AI), 빅데이터 등 첨단 기술에 기반을 둔 파괴력 강한 혁신과 함께 누구도 겪어 보지 못한 새로운 패러다임 전환이 이뤄지고 있다. 감염병 확산, 미세먼지, 기후변화 등 국제 문제를 대하는 국민들의 우려도 높다.

과학기술을 통한 경제 발전이 한계에 다다른 지금이 오히려 다시 한 번 과학기술에 관심을 기울여서 기대를 걸어 볼 시점이다. 그동안 정부는 미래를 위해 꾸준히 R&D 예산을 확대해 왔고, 2019년에는 드디어 'R&D 예산 20조원 시대'(20조5000억원)를 열었다. 지난해(19조7000억원) 대비 연구자 주도형 기초연구, 주력산업 경쟁력 제고 및 중소기업 역량 강화, 국민 삶의 질 향상을 위한 생활 연계 R&D 등에 대한 투자를 늘린 결과다. 정부의 정책 우선순위를 보여 주는 예산 증가율 측면에서 보면 R&D 예산의 전년 대비 증가율은 4.4%로 최근 3년 가운데 가장 큰 폭으로 증가했다.

그러나 정부 예산 총액이 전년 대비 9.5% 증가한 데 비춰 보면 R&D 예산 증가율은 전체의 절반에도 못 미치는 수준이다. R&D 예산 증가율(4.4%)은 사회간접자본(SOC, 4.0%)이나 농림·수산·식품(1.5%)보다는 높지만 산업·중소기업·에너지(15.1%), 문화·체육·관광(12.2%), 보건·복지·노동(11.3%), 교육(10.1%)보다는 훨씬 낮다. 12개 재정 분야 가운데에서는 9위에 불과하다.

소득 주도 성장, 공정 경제와 함께 문재인 정부 경제정책 기조의 한 축을 담당하는 것이 혁신 성장이라는 사실을 굳이 언급해야 할까. 과학기술의 사회 책무를 강화해서 혁신 물꼬를 트고, 이를 바탕으로 경제 성장과 국민 삶의 질 향상을 이루기 위해 R&D에 다시 한 번 집중해야 할 때가 아닐까. R&D 예산이 적어도 전체 예산 증가율만큼은 증가했으면 하는 것은 지나친 욕심일까?

미국 사례를 보자.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는 지난해 예산 편성 과정에서 눈에 띄는 성과가 없는 R&D 예산은 축소하고 사회 기반 확충 등 현안 해결에 집중하기 위해 전년 대비 4.6% 감액된 1494억달러를 R&D 예산으로 편성했다. 그러나 하원(1642억달러)과 상원(1687억달러)에서 오히려 R&D 중요성을 강조하며 정부안 대비 18% 증가한 1768억달러를 최종 통과시켰다. 국가의 미래 비전을 위한 R&D 증액의 필요성에는 여야가 따로 없음을 보여 준다.

중국 역시 시진핑 정부의 2기 출범 후 혁신 주도 발전 과학기술 정책 기조를 유지하고 있다. 저임금 노동력에 의존해 온 중국 경제의 경쟁력이 한계에 부닥쳤음을 인식하고 과학기술을 통한 국가 혁신을 강조하는 것이다. 일본은 제5기 과학기술기본계획을 통해 4차 산업혁명 기술 기반으로 실현될 미래 사회 변화상을 제시하며 2019년도 과학기술 관계 예산을 전년 대비 13.3% 증가한 4조3510억엔으로 편성했다.

저성장 고착화와 복지 예산 증가로 말미암아 모든 분야의 예산을 예전처럼 폭증시킬 수 없다는 정책 당국의 고민은 이해가 되지만 윗돌 빼서 아랫돌 괼 수는 없는 노릇이다. 혁신을 위한 R&D 투자는 국민이 체감할 수 있는 기술 개발을 통한 경제 활성화뿐만 아니라 혁신정책, 과학기술인력, R&D제도 등을 아우르는 국가 미래 비전을 디자인하는 데 쓰인다. 더 나아가 건강, 생활 환경, 문화 여가에 이르기까지 국민의 행복과 관계된 다양한 분야에 스며들어 과학기술 중심 사회로 가는 마중물이 될 투자다. 차곡차곡 쌓아 가야 효과가 나온다. 미래를 위한 투자에 망설일 시간이 없다. 정부 R&D 예산! 아직 갈 길이 멀다.

이길우 한국과학기술기획평가원 사업조정본부장 leekw@kistep.re.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