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자녀에게 질병 권하는 부모는 없다

[기자수첩]자녀에게 질병 권하는 부모는 없다

어린이날 대형마트 게임 구역은 한마디로 아비규환이었다. 어린이들 울음 때문이 아니었다. 아버지들이 레트로 게임기를 아내 몰래 카트에 담다 걸리고, 핑계를 쥐어 짜는 장면이 흡사 지옥도를 연상케 했다. 식은땀이 날 지경이었다. 한두 명이 아니었다. 손은 눈보다 빠르다지만 아내의 눈은 빛보다 빨랐다.

최근 유행하는 레트로 게임기는 30∼40대의 추억을 자극한다. 국내 문화를 관통하는 뉴트로(뉴+레트로) 열풍에 게임이 포함될 정도로 많은 지지를 받고 있다.

중국에서 들여온 개조 기판이 아니라 정식 라이선스를 확보하고 외형까지 그대로 복원한다. 어릴 적에 가지고 놀던 그 게임을 똑같이 즐길 수 있다. 패미콤, 네오지오, 재믹스, 플레이스테이션 등이 복각됐다. 메가드라이브, 캡콤 홈아케이드, 코나미 기판도 출시를 기다리고 있다.

레트로 게임기는 대체로 가격이 높다. 10만원부터 30만원까지 형성돼 있다. 현세대 콘솔을 30만원 안팎에서 살 수 있음을 고려하면 싸다고 할 수 없다. 물량이 충분하지 못한 경우도 있어 중고시장에서 프리미엄이 붙는다. 게임패드 하나에 16만~20만원을 부르는 일도 허다하다.

저렴하지는 않지만 이처럼 불티나게 팔려나가는 데는 향수가 큰 영향을 미친다. '어릴 때와 다르게 주머니에 여유가 있는데도 사지 않으면 내 어린 시절에 대한 모독'이라는 그럴싸한 자기 합리화가 온·오프라인을 관통한다.

자녀세대와의 소통은 물론 관심사를 공유하는 도구로써 레트로 게임기가 활용된다. RPG를 제외한 고전 게임 대부분은 플레이타임이 길지 않고, 협동플레이를 기본으로 한다. 자녀와 함께할 수 있는 시간이 길어야 10년이 안 되고 미세먼지로 야외 활동에 제한을 받는 이때 아빠가 어린 시절에 하던 게임을 함께 즐기며 추억을 공유할 수 있다.

게임을 하며 자란 30∼40대에게는 자연스럽게 일상에 게임이 녹아들어 있다. 자녀와 세대를 연결하고 관심사를 공유할 수 있는 놀이 문화다.

카트에 집어넣었을 때 아내에게 걸리면 십중팔구 “○○랑 함께하면 좋을 것 같아서…”라면서 “아빠랑 함께할래? 하고 싶지?”라고 둘러댔다.

변명이라 하더라도 좋은 건 함께하고 싶은 법이다. 세상천지 어디에도 자녀에게 질병을 권하는 부모는 없다.

이현수기자 hsool@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