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T교수포럼의 정책 시시비비]<50>학현학파-서강학파 논쟁, 나쁘지 않다

[ET교수포럼의 정책 시시비비]<50>학현학파-서강학파 논쟁, 나쁘지 않다

최근 소득 주도 성장의 이론 근거를 놓고 두 경제학파 간 공방이 눈길을 끈다. 소득 주도 성장이라고 하는 정책이자 담론을 던진 쪽은 이른바 '학현학파'라 불리는 일단의 경제학자들이다. 변형윤 서울대 경제학과 교수를 따르는 진보 성향 학자들로, 지금 문재인 정부의 소득주도성장 정책을 주도하고 있기도 하다.

반면에 서강학파라고 하는, 서강대 교수를 지낸 남덕우 전 총리를 중심으로 형성돼 개발경제 시대를 이끈 경제 정책에 이론 근거를 제공한 서강대 경제학자 집단이다. 남 전 총리를 포함해 이승윤 전 부총리, 김만제 전 부총리로 이어지는 계보로 경제개발 기간의 수출 주도 성장과 중화학공업 육성을 주도하면서 성장 중심의 경제학풍을 조성했다.

이 두 학파의 논쟁이 지금처럼 관심 받게 된 데에는 그동안 주로 정치 마당에서 다뤄진 '소주성'(소득주도성장)이라 불리는 정책의 공과 논쟁이 갑작스레 학문 영역과 교차됐기 때문이다.

발단은 서강학파인 것으로 보인다. 소득 주도 성장이 정책으로 성립하려면 '경제 성장보다 임금 상승이 느려야 한다'는 전제가 있어야 하지만 정부나 학현학파가 제시하는 통계에 허점이 있다는 것이다. 학현학파는 국민소득 가운데 노동소득 비중을 일컫는 조정노동소득분배율의 통계를 볼 때 노동자 임금이 줄어드는 것이 맞고, 이에 따라서 정책 근거는 확보된다고 반박한다. 이것에 다시 반박과 재반박이 오가면서 이제 논쟁은 언뜻 이 분배율 계산에 자영업자를 포함하는 것이 타당한지, 그렇다면 어디까지 포함해야 할지 또는 정책으로는 최저임금 인상이 임금근로자와 자영업자 소득에 어떤 역할을 하는지를 밝혀야 하는 것으로까지 옮아가는 것 같다.

진실을 떠나서 이 논쟁을 바라보는 시각은 대개 두 가지로 볼 수 있다. 첫째는 관료화된 학자들의 편 가르기와 자존심 싸움이다. 어떻게 보면 지금 소주성 정책을 놓고 벌이고 있는 이 논쟁은 보수와 진보 양 진영을 대변하는 두 경제학자 그룹의 대리전처럼 보이기도 한다. 정작 학현학파는 김대중·노무현 정부와 지금 문재인 정부의 정책을 맡고 있는 셈이고, 서강학파는 개발연대정책을 주도했을 뿐만 아니라 그 시절 정부의 이른바 '테크노크라트' 중심 관료 사회를 주도한 그룹이다.

반면에 꼭 부정 시각으로 볼 것만은 아니라는 목소리도 있다. 정책이란 원래 정답이 모호하거나 선택지가 여러 가지이거나 심지어 최선책이 아닌 차선책을 택해야만 하는 만큼 좀 더 유효적절한 것을 택하기 위해서라면 논쟁을 피할 수도 피해서도 안 되고, 그만큼 얻는 것도 있다는 것이다.

특히 최근 한 심포지엄을 통해 그동안 관심이 부족한 부분을 자성하는 모습은 바람직할 뿐만 아니라 사실 신선하기까지 했다. 한 언론은 '냉철함이 부족했다'는 제하로 “우리에게 뜨거운 가슴은 있었지만 냉철한 머리로 뒷받침했는지를 반성해 보자”라고 했지만 한편 이런 자평이 가능한 경제학계는 건강하다고 할 수 있다.

어쩌면 이번 소득주도성장 정책을 놓고 벌인 두 학파 간 공방이 이번 한 번으로 끝나지는 아닐 것이다. 그러나 이 같은 논쟁을 통해 그것이 소득주도성장 정책이 됐든 문제인 정부 경제 정책의 다른 한 축인 혁신정책이 됐든 한층 성숙해질 것으로 본다.

어쩌면 다른 정책 분야에서도 지금보다 더 첨예한 논의와 고민이 필요해 보인다. 문재인 정부의 출범 2주년을 맞은 지난 10일을 전후로 열린 정부출연여연구기관(출연연) 토론회가 적당한 정책 비판을 섞어 가며 행사 자리로 삼은 것과 비교하면 정부를 위해서도 국민을 위해서도 이런 건강한 논쟁은 더 나은 일이라 할 수 있다. 단지 자칫 학자라 하는 우월감에 취해 있으면 그것이 어느 편이든 국민이 외면할 것이라는 점은 잊지 말아야 한다. 지금까지 두 학파의 논쟁 모습은 보기에 나쁘지 않았다.

◇ET교수포럼 명단(가나다 순)=김현수(순천향대), 문주현(동국대), 박재민(건국대), 박호정(고려대), 송성진(성균관대), 오중산(숙명여대), 이우영(연세대), 이젬마(경희대), 이종수(서울대), 정도진(중앙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