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T단상]K팝도 국산음향장비로 울려 퍼져야

임익찬 회장
임익찬 회장

K팝으로 통칭되는 우리 한민족의 가락과 음악에 세계가 열광하고 있다. 몇 해 전 가수 싸이가 일으킨 '강남스타일' 열풍에 이어 BTS로 상징되는 한류 문화 인기몰이가 동·서양 간 문화 차이와 인종 벽을 넘어 확산되고 있다. '한류 문화 중흥기가 도래하고 있다'는 것이 전문가 평가다.

전통시대 학자들은 한민족 정서의 특징을 이구동성으로 풍류도라고 일컬었다. 고구려 무용총벽화에는 수렵도와 기마도 외에 남녀 5명의 군무상과 9명의 합창대상이 그려져 있다. 우리 민족에게 가무는 생활의 일부이자 주요 DNA였다.

'한강의 기적'이라 불릴 정도로 세계 12위권의 경제 대국에 오른 우리나라는 반도체, 철강, 조선, 리튬전지 분야에서 세계 기술을 선도하고 있다. 일반 산업 분야에서도 세계 수준을 자랑한다. 그러나 유독 공연장 음향장비 부문에서는 국내 수요가 적지 않은 데도 여전히 외산 장비 지상주의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국산 음향장비를 대표하는 우리로서는 안타까운 일이다.

최근 일류 국가들은 자국 내 정부조달 물자에 자국산 제품을 적용하기 위해 타국 제품에 여러 가지 직간접 규제 정책을 시행한다. 우리나라는 이에 역행하고 있다. 성능과 안정성이 검증되지 않은 외산 제품도 무분별하게 수입·유통된다. 그러나 소비자 보호책은 전무하다.

우리가 만든 자동차, 휴대폰이 세계 일류 상품이 된 원동력은 우리 스스로의 소비였다. 국내에서 설계된 제품은 국제 규격을 적용해 품질을 보증할 수 있다. 자국에서 생산된 제품은 사후서비스(AS), 기술 지원 등에서 소비자 요구에 맞춰 제공하기 쉽다. 국산 제품에 대한 신뢰와 지원이 필요하다.

방송장비 업계에 따르면 연간 1200억원 상당이 공공기관 공연장 음향장비 예산으로 쓰이고 있지만 국산장비 적용률은 5% 미만이다. 만약 이 예산의 50% 정도라도 국산화에 쓴다면 연간 3000만달러의 외화를 절감할 수 있다. 30% 예산을 절약하는 효과는 물론 약 360명의 새로운 청년 일자리를 창출할 수 있다.

전자 산업에서 국산 제품의 위상은 세계 수준이다. 음향장비가 디지털화되면서 개발과 제조에 사용되는 주요 기술은 전자 산업, 정보기술(IT) 산업을 바탕으로 발전하고 있다. 우리나라 엔지니어링은 풍부한 기술과 경험을 갖추고 있다. 세계 수준의 제품을 개발해 공급한다. 이러한 기술을 기반으로 바뀌어 가는 음향장비 시장에서 한국 음향 기술이 강점을 보일 수밖에 없다.

현대 산업은 하드웨어(HW) 개발보다 제품 기획과 설계가 중요하다. 애플이 아이폰을 개발할 때 LG와 삼성 디스플레이를 사용하듯 자재 소싱은 전 세계에 일반화됐다. 자재 기술을 어떻게 제품에 풀어내는지가 더욱 중요하다. 국산 음향기술은 오랜 기간 학습과 선행 개발을 통해 세계 수준의 기술을 확보했다. 제품 기획, 설계 기술 또한 월등하다.

K팝으로 대변되는 한국 정서를 담아내기 위해서는 한국인이 설계하고 튜닝한 음향장비는 반드시 필요하다. 한국 아티스트들이 한국 장비를 사용하고 한국 장비를 개발할 때 한국 아티스트 의견 반영은 바람직한 환경이다. 나라마다 소리에 대한 이해와 평가가 다르다. 우리가 듣고 느끼며 창작한 우리 콘텐츠는 우리 HW에 담아야 그 정서를 정확하게 표현할 수 있다.

국산 음향산업계는 그동안 국내외에서 쌓아 온 기술력과 풍부한 현장 경험으로 공공기관 공연장에서 완벽에 가까운 음향을 제공할 준비가 돼 있다. 이제는 우리가 관심을 기울여서 국산 장비를 이용하고 이를 통해 생산된 우리 콘텐츠에 자긍심을 가질 필요가 있다. 최고 음질과 안정된 장비 공급으로 K팝 한류의 위상을 드높일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지길 기대한다.

임익찬 한국방송음향산업협의회장·임산업 대표 chanleem@leem.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