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ISTI과학향기]'날개 없는 선풍기' 원리는 뭘까

이제 창고 속에 묵혀 뒀던 선풍기를 꺼낼 때가 됐다. 그럴 때마다 항상 느끼는 거지만 선풍기를 분해해 청소하는 것은 정말 귀찮다. 가끔 날개가 부러지면 어쩔 수 없이 선풍기를 버려야 하고, 돌아가는 날개에 손가락을 넣어 다치는 사고도 종종 생긴다. 왜 선풍기는 꼭 날개를 써야 할까.

[KISTI과학향기]'날개 없는 선풍기' 원리는 뭘까

요즘에는 이런 의문 아래 아예 선풍기 날개를 없애버린 제품이 나오고 있다. 이 선풍기는 동그란 고리 모양 윗부분과 작은 원기둥으로 이뤄진 아랫부분을 가졌다. 정식 명칭은 '에어 멀티플라이어(Air Multiplier)'. 말 그대로 바람을 몇 배나 강하게 만든다는 뜻을 가지고 있다. 바람을 강하게 만드는 원리는 비행기에서 빌려왔다. 원기둥 받침대에는 비행기 제트엔진 원리가, 고리 모양 원에서는 비행기 날개 모양이 발견된다.

비행기에 사용되는 제트엔진은 날개를 돌려 바깥 공기를 안으로 빨아들인다. 이 공기가 연료와 섞여 타면 고온의 기체가 나오는데, 이를 밖으로 배출하면서 비행기가 앞으로 가게 된다. 날개 없는 선풍기 받침대에도 작은 모터와 날개가 들어 있다. 이들이 돌아가면서 바깥에 있는 공기를 빨아들이는 것. 이 선풍기에 사용된 모터는 1초에 약 20ℓ의 공기를 빨아들일 수 있다.

받침대에서 빨아들인 공기는 위쪽 동그란 고리로 올라간다. 여기로 올라간 공기는 시속 88㎞ 정도로 빠르게 흐르다가 고리 안쪽에 있는 작은 틈으로 빠져나오게 돼 있다. 이때 고리 모양 때문에 더 강한 공기 흐름이 만들어지게 된다. 속이 빈 비행기 날개처럼 생긴 고리의 단면이 바람을 몇 배나 강하게 만드는 비밀인 셈이다.

날개 없는 선풍기의 원리를 나타낸 그림. 위쪽 고리의 단면을 살펴보면 비행기 날개 모양과 비슷한 것을 알 수 있다. 고리의 바깥쪽은 평평하게, 안쪽은 둥그렇게 생겨서 고리 안쪽의 기압이 바깥쪽보다 낮아지게 된다.
날개 없는 선풍기의 원리를 나타낸 그림. 위쪽 고리의 단면을 살펴보면 비행기 날개 모양과 비슷한 것을 알 수 있다. 고리의 바깥쪽은 평평하게, 안쪽은 둥그렇게 생겨서 고리 안쪽의 기압이 바깥쪽보다 낮아지게 된다.

보통 비행기 날개는 윗면이 볼록하고 아랫면이 평평하게 생겼다. 이 때문에 날개 위아래에서 공기가 다른 속도로 흐르게 된다. 윗면의 공기가 아랫면 공기보다 빠르게 흐르므로 윗면의 기압이 아랫면보다 작아진다. 그래서 비행기 날개가 위로 떠오르는 힘인 양력을 얻게 되는 것이다.

날개 없는 선풍기 고리를 잘라 단면을 보면 바깥쪽은 평평하고 안쪽은 둥그렇다. 단면만 놓고 본다면 비행기 날개를 뒤집어놓은 모양이다. 비행기 날개에서처럼 공기는 둥근 면에서 더 빠르게 흐르므로 고리 안쪽을 지나는 공기가 바깥쪽보다 빠르다. 고리 안쪽 틈에서 나온 공기가 빠르게 흘러가면 고리 안쪽 기압이 바깥쪽보다 낮아진다.

공기는 기압이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이동한다. 고리의 바깥쪽보다 안쪽 기압이 낮아지면 주변 공기가 고리 안쪽으로 이동하게 된다. 이때 고리를 통과하는 공기 양은 받침대에서 빨아들인 공기 양보다 15배 정도 많아지게 된다. 이런 원리로 바람이 만들어지기 때문에 날개 없이도 시원한 바람이 나온다.

날개 없는 선풍기가 만드는 바람은 일반 선풍기보다 더 시원하다. 또 일정한 바람 세기를 만들 수 있다. 날개가 돌아가면서 불규칙한 바람을 만드는 선풍기보다 우수한 점이다. 에어컨을 사용할 때처럼 환경오염 물질을 배출하지 않는 것도 장점이다. 물론 가격은 30만~70만원까지 나가서 에어컨에 맞먹을 정도로 비싸지만 말이다.

글:박태진 과학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