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병준의 어퍼컷]청와대에 경제상황판을 만들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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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병준의 어퍼컷]청와대에 경제상황판을 만들자

국회 도서관에 가면 55인치 모니터 9개를 이어붙인 대형 디스플레이 '미디어 월'을 만날 수 있다. 개관 67주년을 맞아 2월에 설치했다. 그림·사진·영상도 좋지만 백미는 각종 통계정보다. 세련된 이미지로 시각화해 250여개 기관 현황과 이용통계, 국회와 지방의회 의정자료를 보여준다. 모두 '실시간' 데이터다. 서울 여의도에서 전국 주요 기관 정보를 한눈에 파악할 수 있는 것이다. 뜬금없이 국회 도서관 얘기를 꺼낸 이유는 최근 불거진 소득주도성장 때문이다. 논란은 문재인 대통령이 KBS대담에서 경제에 장밋빛 진단을 내리면서 촉발됐다. 사실 대담은 방아쇠일 뿐이지 출범 때부터 벌어진 경제정책 기조를 둘러싼 지지와 비판의 연장선이었다.

정책은 이념에 따라 찬반이 갈리는 게 상식이다. 부정과 긍정 평가가 섞여 있기 마련이다. 국정 3년 차를 맞아 국정운영 틀을 재점검해야 하는 시점에 무조건 눈과 귀를 닫은 정부가 좋아 보일 리 없다. 당장 좌우상하 소통이 중요한 정부가 문을 걸어 잠근다면 비판 받아 마땅하다. 그렇다고 '무조건 아니다' 식의 비판도 무책임하기는 마찬가지다. 정부 권력을 향한 지적은 속은 시원하겠지만 공허하기 때문이다. 경기부진에 따른 책임이 대통령을 포함한 정책 당국에만 있을 수 없다. 반대 주장처럼 소득주도성장을 바꾸면 모든 경제지표가 좋아질까. 역시 설득력이 없어 보인다. 결국 정책기조와 관계없이 상황은 그대로라는 얘기다.

티격태격 순간에도 경제가 멍들어간다는 게 중요하다. 올해 1분기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은 〃0.3%로 뒷걸음질 쳤다. 설비(-10.8%)와 건설투자(-0.1%), 수출(-2.6%)과 수입(-3.3%)로 모두 역신장했다. 설비는 21년, 건설은 2분기, 수출은 1년3개월, 수입은 7년6개월 만에 최저치를 찍었다. 소비를 보여주는 총소득(GDI) 성장률은 소폭 성장했지만 역시 불안하다. 민간과 정부소비는 0.1%, 0.3% 올랐지만 각각 3년과 4년 만에 최저성장률을 기록했다. 한 마디로 우울한 경제 성적표다.

전문가가 아니더라도 숫자만 보면 현주소를 알 수 있다. 숫자가 가진 힘이다. 숫자의 조합인 지표는 그대로 경제 상황이다.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그냥 '팩트'일 뿐이다. 무색무취가 기본이다. 그럼에도 같은 지표를 보면서 시각차가 드러난다. 팩트는 하나인데 경제를 보는 인식은 극과 극이다. 숫자를 덧칠해 왜곡했거나 해석을 달리하기 때문이다. 그대로 보지 않고 이념에 따라 혹은 편견이 개입해 심각한 오독 현상이 발생한다.

그래도 숫자가 보여주는 함의는 무섭다. 통계 속성인 '흐름과 추세' 덕분에 곁길로 흐리지 않고 중심으로 돌아오기 때문이다. 보고 싶은 숫자만 보면서 잠시 눈을 가릴 수 있지만 영원하지 않다. 눈속임도 불가능하다. 단, 전제가 하나 있다. 당사자가 직접 봐야 한다. 따로 보고할 필요도 보고받을 필요도 없다. 정책 책임자는 누구보다 현장 지표와 친해져야 한다.

국회 미디어 월을 주목한 배경도 여기에 있다. 추이를 보기 위해서는 한눈에 볼 수 있는 상황판이 필요하다. 우리나라 정보통신기술(ICT)과 네트워크는 세계 최고 수준이다. 모든 데이터가 축적되고 언제든지 원하는 데이터를 실시간으로 확인하고 분석할 수 있다. 많은 데이터가 필요 없다. 20여개 지표면 충분하다. 이 정도면 민생과 경제 상황을 파악하기에 충분하다. 현장을 제대로 알아야 정확한 처방이 가능한 법이다. 경제 다음에 정책인 것이다. 더구나 경제문제에 진보와 보수, 여야가 따로 있을 수 없다. 공허한 정책 공방에 핏대를 세우기보다 청와대에 경제 상황판을 만드는 게 훨씬 현실적이며 구체적인 대안이다.

취재총괄 부국장 bjkang@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