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진 수술실 CCTV 법안, 환자-의사 갈등 심화

경기도 파주병원 수술실에 설치된 CCTV(자료: 경기도청)
경기도 파주병원 수술실에 설치된 CCTV(자료: 경기도청)

돌연 폐기된 수술실 폐쇄회로(CCTV) 설치 의무화 법안을 둘러싼 논란이 가열된다. 의료사고 예방을 위해 반드시 필요하다는 환자 단체와 의료행위 위축을 근거로 반대하는 의사 단체 간 갈등이 깊어진다.

20일 대한병원의사협의회는 성명서를 발표하고 수술실 CCTV 의무화 법안은 국민 알권리를 제대로 충족하지 못하고, 보건의료 노동자와 환자 인권을 침해하는 반인권적인 법안이라며 폐기를 환영한다고 밝혔다.

협의회는 최근 안규백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대표 발의한 '수술실 CCTV 의무화 법안'이 폐기된데 대해 대리수술, 의료사고를 원천적으로 막지 못한다고 강조한다. 수술장에서 의료진은 개인 식별이 불가능해 CCTV 설치 효과가 없는데다 환자는 나체로 있어 오히려 환자 인권이 침해당한다는 논리다.

정재현 대한병원의사협의회 기획·정책이사는 “수술실 CCTV 의무화 법안은 환자뿐만 아니라 의사, 수술실에서 일하는 비수술 의료진까지 촬영 당해 인권 침해가 우려되는 과도한 입법”이라면서 “수술실은 의료진 얼굴을 포함 전신을 가리는데 대리수술을 막을 수 없으며 인권을 강조하다가 오히려 침해당하는 결과를 초래해 법안 폐기는 당연하다”고 지적했다.

의사단체는 법안 발의 전부터 수술실 CCTV 설치에 강력하게 반대했다. 실제 협의회 회원 8000여 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 수술실 근무 의사 77.8%, 수술실 비근무 의사 68.2%가 수술실 CCTV 설치에 반대했다. △근로자 인권 침해(82.5%) △환자 개인정보 침해(67%) △수술시 집중력 저하(60%) 등을 이유로 제시했다. 공동 발의했던 의원 절반이 철회하면서 돌연 법안이 폐기된 것 역시 의사단체 반대가 영향을 미쳤다는 분석이다.

환자 단체와 의료계 내부에서는 법안 입법 재추진을 강력 촉구해 온도차가 크다. 환자단체는 이번 법안 폐기는 의사단체의 기득권 유지와 집단 이기주의 표상이라고 비판한다. 끊이지 않는 대리수술 문제와 최근 분당차여성병원 신생아 사망 은폐 사건 등 폐쇄적 수술실에서 환자 권익을 보호하기 위해서는 수술실 CCTV 설치가 반드시 이뤄져야 한다는 입장이다.

환자 단체에 이어 최근 한의사계도 성명서를 발표, 수술실 CCTV 의무화 입법 재추진을 촉구했다. 대한한의사협회는 “(수술실 CCTV 의무화 법안) 발의 배경은 사회적으로 큰 충격을 준 대리수술 사망사건, 신생아 사망사고 은폐사건, 수술실 내 환자 성희롱 등으로부터 환자 인권을 보호하고, 혹시 모를 의료사고에 대한 명확한 시시비비를 가리자는 취지”라면서 “수술실 CCTV 설치 법안 폐기에 어떠한 외압도 없었기를 바라며, 국민과 환자단체 바람대로 해당 법안의 조속한 입법을 기대한다”고 밝혔다.

경기도 포천병원에 설치된 수술실 CCTV(자료: 경기도청)
경기도 포천병원에 설치된 수술실 CCTV(자료: 경기도청)

관련 법안을 대표 발의한 안규백 의원이 조만간 입법을 재추진키로 하면서, 이번 논란은 지속될 가능성이 높다. 특히 공동 발의했다 철회한 국회의원과 의사단체까지 비판에 휩싸이면서 환자 단체 목소리는 더 커질 전망이다. 거기에 양의계와 갈등 골이 깊은 한의사단체까지 가세하면서 갈등은 깊어진다.

최성철 환자단체협의회 이사는 “공동 발의했던 국회의원이 이해할 수 없는 이유로 철회하는 등 초유의 사태가 발생했다”면서 “관련 법안을 재발의하도록 공식적으로 요청할 예정이며, 환자 안전을 위해 반드시 통과돼야 한다”고 말했다.

정용철 의료/바이오 전문기자 jungyc@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