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반도체 장비, 위기는 기회다

우려가 현실화됐다. 국내 반도체 장비업계의 올 1분기 실적이 곤두박질쳤다. 국내 최대이자 세계 10대 반도체 장비 업체 가운데 하나인 세메스는 올 1분기에 327억원의 영업적자를 기록했다. 지난해 같은 기간 9000억원에 육박하는 영업이익을 실현한 점을 감안하면 심각한 수준이다. 이밖에 원익IPS, 제우스, 테스, 이오테크닉스 등 주요 반도체 장비 업체의 영업이익 감소폭은 적게는 20%에서 많게는 100%에 가깝다. 1분기만 놓고 보면 사실상 근근이 버틴 셈이다.

실적 저하는 어느 정도 예견된 것이었다. 지난해 하반기부터 반도체 시황 악화로 삼성전자, SK하이닉스의 설비투자가 급감했기 때문이다. 여기에 디스플레이 시장 상황도 여의치 않다 보니 반도체·디스플레이 장비를 함께 영위하는 업체의 경우 기댈 언덕도 마땅치 않았다.

그러나 글로벌 반도체 장비 업체 상황을 비교해 보면 시사점이 적지 않다. 어플라이드머티리얼즈·램리서치·ASML 등도 동반 침체를 기록했지만 이들 업체의 영업이익 감소폭은 20~30%에 불과하고, 영업이익률도 20%대를 유지했기 때문이다. 이들 기업은 업황이 악화돼도 높은 수익을 거둘 수 있을 정도로 탄탄한 기술력을 갖췄다는 공통점이 있다. 수요 기업 전체 투자는 줄이더라도 꼭 필요한 장비 구매와 유지보수에는 어쩔 수 없이 지갑을 열었다는 의미다.

우리 기업도 핵심인 전(前) 공정과 차세대 공정 기술 개발에 더욱 진력해야 한다. 특히 위기 상황에서 미래를 준비하는 업체에 다시 찾아올 호황이 큰 기회가 될 것이라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실적이 악화됐다고 인력 구조 조정부터 하는 과오는 되풀이하면 안 된다.

정부도 업체의 연구개발(R&D)을 뒷받침하는 정책적 지원이 필요하다. 다행히 소재부품에 이어 장비를 차세대 주요 산업으로 육성하려는 움직임은 반갑다. 국내 장비 업체의 강점과 약점은 무엇인지, 차세대 기술 진화는 어떠할 것인지 냉철히 파악해서 맞춤형 정책을 설계하길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