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재민 교수의 펀한 기술경영<166>아키텍처 함정

아키텍처(Architecture). 사전은 기계 구성이나 구조라는 의미가 있다고 한다. 딱 맞는 사례가 하나 있다. 큰 바퀴 자전거다. 자전거가 대중화될 무렵에는 앞바퀴 굴림 방식이었다. 페달은 앞바퀴에 붙어 있다. 한 번 굴려서 멀리 가자니 앞바퀴가 점점 커졌다. 좌석은 큰 앞바퀴 위에 높이 자리 잡았고, 앞으로 고꾸라지기 십상이었다.

1885년에 존 스탈리는 페달에다 체인을 건 뒷바퀴 굴림 자전거를 내놓는다. 이제 앞바퀴는 클 이유가 없다. 좌석도 두 바퀴의 중간에 놓이니 앞으로 넘어질 위험이 줄었다. 로버라는 이름의 이 자전거는 '안전자전거'로 불렸다.

@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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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어떤 혁신은 성공하지 못할까. 갑작스러운 내리막길은 무엇 탓일까. 레베카 헨더슨 미국 매사추세츠공대(MIT) 경영대학원 교수에게는 한 가지 단서가 있었다. '아키텍처 함정'이라는 것이다.

포토리소그래피 산업을 보자. 회로기판을 인쇄하는 이 광학기계는 쿠리키앤드소파가 처음 개발했다. 무려 9년 동안 시장을 100% 독점한다. 그러다가 새 전사 기술을 들고 나온 코빌트과 캐스퍼에 시장이 넘어간다. 그러나 곧 캐논의 비접촉 기술에 시장 대부분을 다시 내준다. 그러곤 1974년 퍼킨엘머가 '스캐닝 프로젝션'이라는 새 기술을 들고 나온다. 잠깐 사이 시장을 석권한다. 그러다 다시 '스테퍼'라는 기술을 들고 나온 GCA에 시장을 온전히 넘긴다. 그러나 곧 2세대 스테퍼를 출시한 니콘에 시장 대부분을 뺏긴다.

이렇게 기술이 다섯 번 바뀌는 동안 시장 주인도 다섯 번 손바꿈을 한다. 코빌트는 전성기에 시장 44%를 차지했지만 곧 사라졌다. 캐논도 한때 시장의 3분의 2를 향유했지만 스캐너 기술이 나오자 점유율은 5분의 1로 곤두박질쳤다. 80% 시장을 퍼킨엘머가 대신 차지했지만 얼마 못가 밀려난다. 1세대 스테퍼로 지배자가 된 GCA의 점유율 55%, 니콘이 2세대 스테퍼를 내놓자 그 반에 반 토막으로 준다.

어떻게 이런 일이 벌어졌을까. 새 기술의 존재를 모르고 있은 것일까. 두 교수는 이것이 기술 문제가 아니라고 말한다. 그 대신 실패는 아키텍처를 따라가지 못한 생각의 한계에 있었다고 말한다.

캐스퍼를 보자. 캐논이 비접촉식 프린터를 출시할 즈음 캐스퍼는 이미 이 기능을 갖추고 있었다. 단지 비접촉 옵션에선 웨이퍼와 노즐은 정렬이 관건이었다. 캐논은 정교한 정렬이 가능하게 프린터 구조를 재설계했다. 그러나 접촉 방식이 기본형인 캐스퍼는 더 나은 정렬을 위해선 구조가 중요하다는 점을 깨닫지 못했다. 실상 캐스퍼나 캐논의 구조는 비슷했다. 캐스퍼는 문제가 어디서 시작됐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GCA도 마찬가지였다. 니콘이 2세대 스테퍼를 내놓을 때 자기 복제품이라 여겼다. 위협을 인지한 후에도 문제가 부품 하나하나 성능이 아니라 아키텍처에 있다는 점을 알지 못했다.

비슷한 기술, 비슷한 제품, 비슷한 비즈니스 모델이 넘쳐난다. 그러나 누군가 그토록 쉽게 성공할 때 누군가는 뭐가 문제였는지조차 모르는 채 사라져 간다.

박재민 건국대 기술경영학과 교수
박재민 건국대 기술경영학과 교수

클레이턴 크리스텐슨 하버드대 교수의 그 유명한 와해성 혁신도 닮은꼴이다. 실패는 비즈니스가 작동 방식이 어떻게 변했는지 모르고 있는 데 있다. 내가 잘 안다고 믿고 있던 바로 그곳에 함정이 하나 숨겨져 있은 셈이다.

박재민 건국대 기술경영학과 교수 jpark@konkuk.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