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ILO 핵심협약 비준과 관련 법 개정 동시 추진...9월 정기국회 제출 목표

정부가 국제노동기구(ILO) 핵심협약 비준을 관련 법 개정과 동시에 추진한다. 정부는 비준을 추진하지만 입법 병행을 전제로 하기 때문에 노동계가 주장한 '선 비준, 후 입법'을 수용한 것은 아니라고 선을 그었다. 경영계는 정부 정책 신뢰성이 저하된다는 측면에서 우려를 표했다.

이재갑 고용노동부 장관.
이재갑 고용노동부 장관.

이재갑 고용노동부 장관은 22일 정부세종청사에서 브리핑을 열고 우리나라가 아직 비준하지 않고 있는 ILO 핵심협약 4개 중 3개를 비준하기 위해 관련 절차를 진행한다고 밝혔다. 오는 9월 정기국회를 목표로 비준동의안을 국회에 제출하기로 했다.

이 장관은 “결사의 자유 협약 제87호와 제98호, 강제노동 협약 제29호 등 3개 협약에 대해 비준과 관련한 절차를 진행하겠다”라며 “헌법상 입법사항에 관한 조약의 비준을 위해서는 국회 동의가 필요한 만큼 관계부처와의 협의, 노사 의견수렴 등 관련된 절차를 거쳐 정기국회를 목표로 비준동의안을 국회에 제출하겠다”고 밝혔다.

ILO는 각국과 맺은 189개 협약 가운데 8개를 핵심 협약으로 정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이중 차별과 아동 노동을 금지하는 4개 항목만 비준하고, 결사의 자유와 강제 노동 관련 4개 항목은 비준하지 않았다.

정부는 그동안 '선 입법 후 비준' 입장을 고수하며 경사노위 합의를 기다렸다. 경사노위가 합의에 실패하고 국회 파행이 길어지자 비준동의안과 법률개정안을 9월 정기국회에 동시에 논의될 수 있도록 추진한다는 입장을 표명했다.

이 장관은 “정부가 선 비준을 추진하는 것은 아니다”라며 “우리나라 헌법체계상 선 비준은 사실상 어렵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는 “이번에 비준을 추진하는 핵심협약 중 결사의 자유 협약은 우리 산업현장에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법 개정 사항을 수반해야 한다”라며 “적어도 법개정안과 비준동의안이 국회에서 같이 논의돼야 하는 구조”라고 강조했다.

정부는 이번에 핵심협약 비준 추진에서 강제노동 제105호 협약은 제외하기로 했다. 강제노동 제105호 협약은 우리나라 형벌체계, 분단국가 상황 등을 고려할 때 추가 검토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이 장관은 “제105호 강제노동 금지 협약은 형벌로써 노역 부과를 못하도록 돼있는데, 이는 우리나라 전체 형벌체계를 개편해야 되는 문제와 맞물려 추진하기가 어렵다”고 설명했다.

최근 유럽연합(EU)이 한-EU 자유무역협정(FTA)에 근거해 우리나라 ILO 핵심협약 비준노력이 미흡하다는 이유로 FTA 사상 최초로 분쟁해결 절차를 개시한 바 있다.

이 장관은 “비준 관련 사항을 EU 측에도 설명할 계획”이라며 “(EU) 내부적으로 분쟁절차 최종 단계인 전문가 패널로 회부하는 것으로 거의 결정하고 있는 것 같아 정부 견해와 계획을 지금 공식 발표하고 이 사항에 대해 EU 쪽에 설명할 생각”이라고 말했다.

경영계는 이날 정부 발표에 대해 단결권만 확대되면 부작용이 우려되는 만큼 향후 의견수렴 과정에 적극 참여하겠다는 입장을 발표했다. 한국경영자총협회는 “대립적·갈등적·불균형적 노사관계와 노동법제 속에서 단결권만 확대할 경우 예상되는 부작용과 사용자측의 우려가 매우 높다”고 밝혔다. 이어 “정부는 우리나라 특수성에 입각해 노사관계를 협력적·타협적·균형적으로 전환시키는 틀을 정립하는 국가 노동개혁 차원에서 이 사안을 다뤄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추광호 한국경제연구원 일자리전략실장은 “과거 ILO협약 비준 절차 등을 감안하면 선 개정(입법) 후 비준' 합리적인데 이 절차를 준수하지 않는 것은 이해당사자인 노사갈등을 심화시킬 것”이라고 지적했다.

추 실장은 “정부가 마련하는 노사관계제도 개선방안에 노사 간 힘의 균형을 유지할 수 있도록 주요 선진국·경쟁국처럼 파업시 대체근로 허용, 쟁의행위 찬반투표 절차 개선, 부당노동행위시 형사처벌 규정 폐지 등 경영계 방어권을 보장하는 방안이 다양하게 마련되기를 바란다”고 주문했다.

함봉균 정책(세종) 기자 hbkone@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