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산책] 기억을 찾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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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산책] 기억을 찾아서

매년 미국에서 열리는 신경과학회에는 수만명이 모인다. 규모를 보면 뇌 과학 분야가 얼마나 넓은지 새삼 느끼게 된다. 유전자나 신경세포 수준에서 인간의 고등 인지나 행동까지 아우른다. 연구자가 관심을 두는 뇌 영역 기능에 따라서도 연구 분야가 다양하다. 최근 대중이 뇌 과학을 친근하게 느끼는 데에는 아마 인지신경 과학의 역할이 컸을 것으로 생각한다. 우리가 실제 겪거나 의문을 품을 만한 것을 연구 주제로 다루다 보니 전문 용어를 사용하지 않고도 다소 알기 쉽게 연구 내용을 전달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필자는 인지신경 과학 가운데에서도 인간 기억과 학습 분야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기억과 학습은 바늘과 실 같은 관계다. 기억이 형성되는 과정 자체가 학습이며, 학습한 내용을 뇌에 저장하고 끄집어낼 수 있는 기억이 없다면 학습이 이뤄졌다고 보기 어렵다.

기억을 시간 개념으로 분류하면 단기 기억과 장기 기억으로 나눌 수 있다. 본질에 따라선 기억 대상이 되는 내용을 말로 표현할 수 있는지 여부로도 구분할 수 있다. 우리가 육하원칙에 따라 과거에 경험한 일이나 알게 된 사실에 대해 설명할 수 있다면 이는 서술이 가능한 기억이다. 반면에 수영법과 같은 운동하는 방식에 관한 기억, 공포나 심리외상(트라우마) 같은 정서 등은 말로 표현이 불가능한 기억에 해당한다.

과학자는 '기억을 없애거나 향상시킬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질문을 하면서 많은 연구를 수행했다. 최근 국내 기초과학연구원(IBS) 인지·사회성 연구단은 공포 기억을 없애는 데 사용되는 심리치료법의 과학 효과를 검증한 바 있다.

필자는 IBS 뇌과학 이미징 연구단 소속으로, 신경조절 기술의 한 종류인 경두개자기자극을 가하는 시험을 했다. 초당 20차례의 높은 주파수로 반복해서 왼쪽 두정엽에 있는, 뇌 기억을 담당하는 해마체와 관련된 신경망을 자극해서 활성화시켰다. 이를 기능성자기공명영상(fMRI)으로 검증함으로써 인간의 연관 기억 능력을 높일 수 있는 가능성을 보여 줬다. 경두개자기자극 기술 원리는 요즘 가정에서 사용하는 인덕션 전기레인지와 같다. 전자기 유도 현상을 이용해 두개골 안쪽의 뇌 피질에 미세한 전류를 생성시켜서 뇌를 자극하는 기술이다. 전전두엽을 자극하면 우울증 치료 효과가 큰 것으로 알려져 있어 실제 정신병 치료에 사용되기도 한다. 현재는 증상이 가벼운 인지 장애나 초기 치매 환자 치료에 사용될 수 있도록 병원과 협업한 임상시험을 계획하고 있다.

머리에 직접 전류를 흘려 넣어서 자극하는 신경 조절 방식도 쓰인다. 이를 활용해 인간의 인지·운동 능력을 향상시키는 연구를 사업화해서 회사를 설립한 사례도 있고, 실제로 스포츠 선수가 훈련 때 사용하면 효과가 있다는 보고도 있다.

전류 자극으로 스포츠 선수의 운동 능력이 향상되면 약물을 복용한 것처럼 도핑 행위에 해당될 수 있어 올림픽 같은 공식 스포츠 경기에서는 금해야 한다는 주장도 제기되고 있다.

신경 조절 기술은 학습과 기억 능력을 상실한 치매·뇌졸중·파킨슨병 환자 치료에도 적용될 수 있는 등 무궁무진한 활용이 기대된다.

그러나 이 같은 신경 조절 기술이 어떠한 방식으로 뇌의 활동을 변화시키는지는 여전히 미지의 영역으로 남아 있다. 정확하게 밝혀지지 않은 부분을 탐험하기 위해 필자를 비롯한 뇌 과학 연구자들이 인간과 동물 대상으로 많은 시험 및 실험과 연구를 하고 있다. 국내 최고 연구 시설과 환경을 갖춘 뇌과학 이미징 연구단은 연구자의 기초과학에 대한 열정과 도전이 넘쳐나는 곳으로, 신비에 싸인 수많은 질문을 해결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앞으로도 인지 신경 과학에 대한 관심과 투자가 많아져서 신경 조절 기술이 인간의 학습과 기억 능력을 정상으로 회복시키고, 심지어 향상시킬 수 있는 그런 날이 그리 멀지 않는 미래에 오기를 고대해 본다.

김성신 IBS 뇌과학 이미징 연구단 연구위원 sskim0905@skku.edu