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 금기어 된 '최저임금 인상률'

“청와대에서는 '최저임금 인상률'과 관련해 어떠한 의견도 입 밖으로 꺼낼 수 없어요.”

2020년도 최저임금 심의가 이달 말부터 본격화할 예정인 가운데 청와대 내부에서 '최저임금 인상률'이 사실상 '금기어'로 통하고 있다. 지난해엔 최저임금 인상이 고용에 부정적인 영향을 줬다는 것이 금기시됐으나 올해 들어서는 인상률 자체에 관해 어느 누구도 쉽게 얘기를 꺼낼 수 없는 분위기다.

청와대. 박지호기자 jihopress@etnews.com
청와대. 박지호기자 jihopress@etnews.com

23일 청와대 관계자는 “각 비서관실 마다 입장이 다른데다 워낙 민감한 사안인 만큼 청와대서 어느 누구도 최저임금 인상률에 의견을 자유로이 낼 수 없는 상황”이라며 “단지 개인 의견만 마음에 담고 있을 뿐”이라고 전했다. 누구의 지시도 없었지만 최저임금 인상률이 금칙어, 금기어로 여겨지고 있다는 것이다.

최저임금과 관련해 직접적으로 연관된 곳은 정책실 산하 일자리수석, 경제수석실이다. 수석실은 물론이고 같은 수석실 산하에서도 비서관실 간 입장도 미묘한 차이를 보인다. 일자리수석실 산하 일자리기획과 고용노동비서관실의 경우 노동계가 최저임금 1만원 대선공약 이행을 강력히 요구하지만 최저임금 인상이 일자리 창출에 걸림돌로 작용할 수도 있다는 게 고민이다. 경제수석실 산하 자영업비서관실은 사업주 의견을 반영할 경우 임금 인상을 최저 수준으로 주장할 수밖에 없다. 지난 2월 청와대에서 열린 자영업자과의 간담회에서는 '최저임금 동결' 요구가 나왔다.

상황이 복잡한 만큼 청와대는 철저하게 거리를 두는 모습이다. 2020년 최저임금 인상률 적정 수준을 청와대가 3~4%로 판단하고 있다는 최근 언론 보도에도 즉각 입장을 내며 부인했다. 고민정 대변인은 21일 춘추관 브리핑에서 “청와대에서 이와 관련해 어떤 것도 논의하지도, 결정하지도 않았다”며 “최저임금은 최저임금위원회에서 결정할 사안”이라고 밝혔다.

청와대 내에서 임금 인상률에 대한 의견을 일체 낼 수 없는 상황이지만 속도조절 관련해서는 공감대를 이뤘다.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해 “2020년까지 최저임금 1만원 목표는 사실상 어려워졌다”며 공식 사과한데다 최근 언론 대담에서도 속도조절론을 언급했다. 문 대통령은 대담에서 “(최저임금이) 2년 간 꽤 가파르게 인상됐다. 긍정적인 측면도 많지만 부담을 주는 부분도 적지 않다”며 “최저임금위원회가 이를 감안해 적정선으로 판단하지 않을까 하고 기대한다”고 말했다

정부는 이달 말까지 현재 공석인 최저임금위원회 공익위원 8명을 임명할 예정이다. 위원회는 공익위원 인선이 마무리되는 대로 내년도 최저임금 결정을 위한 본격적인 심사에 착수한다.

성현희 청와대/정책 전문기자 sunghh@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