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라인]누구를 위한 대기업 참여 제한인가

[데스크라인]누구를 위한 대기업 참여 제한인가

○○ 기업 사정은 요즘 어떤가요? 한 중소 소프트웨어(SW) 기업 대표가 전화로 한 중견 시스템통합(SI) 기업의 상황을 묻는다. 정부 프로젝트에 SW를 공급하라고 하는데 이 SI 업체의 자금 사정이 좋지 않다는 소문이 시장에 돌고 있기 때문이다. 제품을 공급했다가 대금을 받지 못할까 우려하며 이 기업의 상황에 촉각을 곤두세웠다.

정부는 지난 2013년부터 전자정부 사업에 대기업의 참여를 제한했다. 대기업 위주 시장 구조를 바로잡고 중소 SW 기업 중심으로 생태계를 활성화하기 위해서다. 중견·중소 기업은 대기업이 빠지면서 매출이 늘었다. 그러나 영업이익이 1% 미만으로 수익성은 악화됐다. 사업을 수주할수록 적자라는 말이 터져 나온다. 중견 SI 기업들은 수익성 낮은 공공 사업은 수주하지 않겠다고 한다. 예산은 늘지 않는 데다 여전히 정부의 공공기관 프로젝트는 과업 변경이 많다.

GettyIm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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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견 SI 기업과 사업을 하게 된 공공기관은 어떠할까. 발주처 공무원은 중견·중소 SI 기업과의 프로젝트 수행이 힘들다고 토로한다. 대기업이 모든 것을 다 처리해 주던 시스템에 익숙한 공무원은 중견 SI 기업의 수행 시스템 적응에 여전히 어려워하고 있다. 정부는 전자정부 시대를 넘어 디지털 정부로의 전환을 꾀하고 있다. 최근 기업이 디지털 전환에 속도를 내는 것과 같은 맥락이다. 기존 전자정부는 오프라인 업무를 단순히 온라인화한 것이다. 동사무소에 가서 발급받던 주민등록등본을 가정에서 프린터로 발급받는 형태다. 디지털 정부는 이 같은 작업이 아예 필요 없다. 주민등록등본을 집에서 프린트하지 않고 필요로 하는 공공기관에 QR코드 등을 보여 주면 바로 확인하는 구조다. 정부는 빅데이터, 인공지능(AI), 클라우드 기술로 디지털 전환을 준비하고 있지만 중견 SI 기업이 제대로 수행할지에 의구심을 표한다.

대기업은 어떠한가. 대기업은 2013년 공공사업 참여 제한이 시행된 후 국내 매출을 넘어 수출까지 타격을 받았다. 전자정부 시스템 수출액은 2015년 5억달러 돌파 후 2016년 2억6945만달러, 2017년 2억3000만달러로 줄었다. 대기업이 해외 사업 입찰에 참여하려면 최소 3년 이내의 전자정부 구축 실적이 필요하다. 대기업은 해외 사업에 참여하고 싶어도 3년 이내 실적이 없어 제안서조차 내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이유야 어떻든 한국 정부도 사업을 맡기지 않는 기업에 외국 정부가 프로젝트에 문을 열지 않는 건 당연하다.

대기업 참여 제한이 시행된 지 7년이 됐다. 어떤 곳도 혜택을 보지 못했다. 발주처도 SW 기업, 중견 SI 기업, 대기업도 모두 행복하지 않다.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일까. 여기 저기 파열음이 나오고 있지만 정부는 개선 시도도 하지 않는다.

지난 7년 동안 발생한 득과 실을 따져 봐야 할 시점이다. 계속 이 상태로 유지해야 하는지, 개선이 필요한지 논의를 시작하자.

글로벌 SW 기업은 적과의 동침도 불사하며 디지털 전환 시대에 어울리게 협력 강화를 발 빠르게 하고 있다. 마이크로소프트(MS)와 오픈소스 대표 주자 레드햇이 손을 잡는 세상이다. 건전한 SW 생태계가 산업과 국가 미래를 좌우한다. 정부와 대기업, 중소기업, SW 전문 기업 모두 한자리에 모여 이야기를 시작해야 한다. 법을 당장 바꾸라는 것도 아니다. 서로의 입장을 듣고 개선 방안과 협력 모델을 이야기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