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T단상]서민 위한 실손보험 간소화를 누가 막는가

박나영 금융소비자연맹 정책개발팀장
박나영 금융소비자연맹 정책개발팀장

우리 국민 3명 가운데 2명은 실손의료보험에 가입하고 있다. 금융감독원이 공개한 '보험사 실손의료보험 현황'에 따르면 2017년 말 기준 개인 실손보험 계약 수는 3419만건이다. 이는 우리나라 전체 국민의 66% 수준이다. 2017년 말 국민건강보험 가입자가 5094만명으로 97.2%고 직장인 건강보험 가입자가 3690만명인 것을 고려하면 실손보험은 국민건강보험과 견줄만한 규모라 할 수 있다.

실손보험 가입이 강제 의무 보험인 국민건강보험만큼 보편화되고 있지만 서비스는 전혀 다르다. 2009년 국민권익위원회는 실손보험 청구가 비효율이며 불편하다고 지적하고 제도 개선을 권고했다. 그러나 10년이 지난 지금도 소비자는 불편을 겪고 있다. 왜 실손보험 가입자는 불편하게 보험금을 청구해야 할까?

실손보험 청구 간소화가 필요한 이유는 단순 편리하기 위해서지만 그보다 중요한 것은 보험·거래비용이 편익비용보다 낮다는 점이다. 소액이기 때문에 청구를 포기하는 것이 가장 큰 문제다. 국민 대다수가 가입하는 실손보험이 제 기능을 하지 못한다는 방증이다.

만약 국민건강보험을 매번 영수증을 떼어서 제출하고 보험금을 받는다고 상상해 보자. 몇 천원 또는 몇 백원을 받기 위해 팩스를 보내거나 청구 시간을 내기 어려운 서민들은 청구를 차일피일 미루다 보험금을 받지 못하게 될 수 있다. 노인은 청구 방법을 몰라 애를 먹을 수도 있다. 이처럼 청구 간소화는 당연히 받아야 하는 '내 보험금'을 받기 위해 반드시 실행돼야 하는 정책이다.

다만 현재는 내 보험금을 받지 못하는 사례가 빈번하게 발생한다. 금융소비자연맹(금소연)이 일반인 1000명을 대상으로 실손보험 가입 실태 및 요구 분석을 한 결과 보험금 청구 이유 가운데 83.2%는 외래진료였다. 보험금을 청구하지 않는 소비자 진료도 82.4%가 외래진료였다.

실손보험을 청구하지 않는 이유는 금액이 소액이라는 의견이 전체의 절반을 상회하는 51.0%로 나타났다. 그 뒤를 청구 절차가 번거롭다는 의견, 시간 등 여력 부족이라는 의견, 청구에 따른 추가비용 발생 등이 이었다. 이에 따라서 실손보험 간소화가 실현되면 보험금을 받는 소비자가 많아지리라는 것을 예측할 수 있다.

그러나 현실은 소비자 중심으로 진행돼야 하는 정책임에도 의료계의 반발을 사고 있다. 의료계는 실손보험의 경우 민간 보험사와 계약자가 사사로이 맺은 계약이어서 전 국민을 대상으로 운영하는 국민건강보험과 다르다는 이유다. 그러나 이미 교통사고 보험금 지급에서는 보험금 지급 간소화가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을 거쳐 이뤄지고 있어 이 같은 의료계의 주장은 타당성이 떨어진다.

보험업계는 의료계의 거부 의사에 대해 진료 수가 공개 부담이 가장 크게 작용하고 있다는 입장이다. 실손보험금이 자동 청구될 경우 심평원이 의료기관별로 책정한 진료 수가를 확인할 가능성이 짙고, 결국 진료 수가 표준화 요구로 의료계를 압박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금소연에는 실손의료비가 지급되지 않아 보험사에 민원을 청구한 소비자의 민원이 들어온다. 그런 소비자들의 하소연은 왜 보험금을 받을 수 없는지 이유를 아무도 설명해 주지 않는다는 것이다. 의사는 진료만 할 뿐 보험금 지급에 대해선 신경을 쓰지 않고, 보험 회사는 이 질병이 보험 범위에 해당되지 않는다고 거절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실손보험 간소화가 이뤄지면 즉시 보험금 지급 여부 결과를 알 수 있어 보험금 지급을 둘러싼 민원도 줄일 수 있다.

실손보험청구 간소화는 서민에게 소액이라도 빠짐없이 보험금을 받을 수 있게 하는 제도다. 이를 환영하지 않는 의료계는 누구를 위해 존재하는지 의문이 제기된다. 빠른 시일 안에 실손보험 청구 간소화가 이뤄져서 소비자가 편리해지고 보험금을 정당하게 받는 권리를 누릴 수 있어야 할 것이다.

박나영 금융소비자연맹 정책개발팀장 parknayoung@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