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한국판 '다이슨, 발뮤다'

[기자수첩]한국판 '다이슨, 발뮤다'

최근 가전업계 중견 기업인을 연이어 만났다. 다른 시점에서 이뤄진 만남이었지만 공교롭게도 이들과의 대화 주제는 같았다. 바로 프리미엄 브랜드 육성의 필요성이었다. 한 기업인은 기자에게 유명 유럽 브랜드 냉장고를 보여 줬다. 브랜드 파워와 감각적인 디자인으로 동급 대비 비싼 가격에 팔리는 제품이었다. 그는 “인기 있는 제품이지만 제조업자 입장에서 봤을 때 이 제품의 마감 수준은 떨어진다”면서 “국내에서 제품을 이렇게 만들면 팔 수도 없다”고 혹평했다. 그는 그러면서 “이 제품은 한국 브랜드 냉장고보다 훨씬 비싸게 팔린다”며 아쉬워했다.

한 최고경영자(CEO)는 무선청소기와 공기청정기를 예로 들고 “제품을 비교 분석하면 설계와 품질은 한국 브랜드가 외산 대비 월등하다. 한국 기업의 제조 기술은 세계 수준”이라면서 “그러나 가격은 외산 브랜드의 절반 가격에 내놔도 잘 팔리지 않는다”고 토로했다. 품질을 갖췄음에도 제 값을 받을 수 없다는 것이다.

국내 가전업계의 살림살이는 팍팍하다. 치열한 경쟁 속에 원가 절감은 처절하다. 이윤은 최소화된다. 실제 가전 분야의 중견·중소기업 실적을 보면 대부분 영업이익률이 5%를 넘기 어려운 형편이다. 시간도 많지 않다. 중국 가전제조업의 경쟁력이 크게 향상돼 국내 기업의 입지를 잠식하고 있기 때문이다.

중견·중소기업에서도 프리미엄 브랜드를 잘 키워서 성공 사례를 만들어야 한다. 성공한 제품이 나오고 축적돼야 중소·중견 브랜드에 대한 소비자 인식도 개선된다. 외산 브랜드를 선호하는 소비자 취향을 탓할 수 없다. 국내 브랜드에 대한 막연한 불신을 바꾸는 것은 기업의 몫이다.

프리미엄화는 기업의 영속을 위한 필수 코스가 됐다. 삼성전자, LG전자 등 주요 기업들은 일찌감치 고가의 프리미엄 브랜드를 론칭했다. 국내 중견·중소기업도 제조 기술력과 노하우는 충분하다. 규모가 작다고 프리미엄 전략을 못 짤 것도 없다. 하루 빨리 한국판 '다이슨'과 '발뮤다'가 탄생하길 기원한다.

이영호기자 youngtiger@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