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 질병화 후폭풍…학부모 입소문에 한방치료 확산

@게티이미지뱅크
@게티이미지뱅크

한의를 활용한 게임장애 치료가 명문대학 진학률이 높은 학군을 중심으로 확산되고 있다. 업계는 예상했던 수순이라면서도 우려의 눈길로 바라보고 있다. 게임장애 한국표준질병사인분류(KCD) 등재와 상관없이 게임중독 치료 시장 선점 경쟁이 시작된 셈이다.

30일 게임업계와 학부모커뮤니티에 따르면 정신과 기록이 남지 않는다는 점을 내세워 몇몇 한의원이 치료 프로그램을 도입·홍보하고 있다. 게임과 게임장애를 같은 개념으로 사용, 학부모 사이 입소문을 타고 빠르게 퍼지는 중이다. 정신질환, 정신병 등 부정적인 이미지가 없어 내원 허들이 낮기 때문이다.

학부모는 게임을 하는 행위 자체가 학업을 방해한다고 생각하면서도 정신과 상담, 치료기록이 향후 취업, 결혼에 영향을 줄 수 있다는 걱정에 한의원을 대안으로 선택하고 있다.

서초구 한 한의원에서 만난 학부모는 “게임중독이 질병이라는 뉴스를 접하고 아이를 보니 너무 게임을 많이 하는 것 같아 데리고 왔다”며 “이름부터 무서운 정신과보다는 한의원이 친숙하다”고 말했다. 자녀는 “엄마가 억지로 데리고 왔다”며 울상을 지었다.

게임장애를 한방신경정신의학 관점에서 치료하는 한의원은 송파구, 강남구, 서초구, 노원구 등 명문대학 진학률이 높은 지역을 중심으로 형성돼 있다. 방문, 전화 문의한 한의원 30곳 중 24곳이 게임장애와 직간접적인 치료를 진행하고 있었다. 특정 지역을 중심으로 이틀간 방문한 것이라 서울과 수도권으로 확대할 경우 더 많은 한의원이 게임장애를 치료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한의학은 뇌 활동 측면에서 접근하는 양의학와 달리 인간 정신작용이 생명력 발현현상이라는 인식에서 접근한다. 한약, 침, 한의 정신치료, 뜸, 부항 등으로 치료를 시도한다.

이들은 감정, 의욕을 주관하는 심장과 비장에 기운이 부족해 생기는 '심비양허', 충동을 조절하는 간 기운이 막힌 '간기울결', 심장과 간에 과도한 열이 생성돼 불안과 분노를 발생시키는 '심간열성'을 게임장애 원인으로 분석한다. 심장과 간 열을 내려 정서를 안정시켜 충동 조절을 하고 비장 기운을 보충해 게임 외 해야 할 일에 대한 집중력을 회복시킨다고 주장한다.

학부모 이해를 쉽게 하려고 연구 논문을 인용하기도 한다. 게임에 노출되면 우뇌 발달이 지연돼 공격적 성향이 나타나고 공감능력이 부족해진다는 것이다. 주의력결핍과잉행동증후군(ADHD), 우울증, 불안장애, 학습장애 등 동반질환으로 연결된다고 설명한다.

게임장애 질병분류를 환영하는 정신의학계에서는 한의학 치료활동을 탐탁지 않게 보고 있다. 세계보건기구(WHO)가 국제질병사인분류 11차 개정안(ICD-11)에 한의학(중의학)을 넣을 때부터 갈등양상을 보여왔다. 국내에서는 최근까지도 엑스레이 사용을 두고 양의와 한의가 날을 세우고 있다.

업계에서는 예정된 수순이라면서도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한 게임사 관계자는 “우려했던 일들이 하나둘씩 생기고 있다”며 “게임과 게임장애를 구분하지 못하는 현상이 지속되면 게임자체가 중독으로 받아들여지는 사태가 올 것”이라고 경고했다.

이현수기자 hsool@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