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병준의 어퍼컷]화웨이가 아니라 삼성이었다면

[강병준의 어퍼컷]화웨이가 아니라 삼성이었다면

미국과 중국이 기술패권을 놓고 제대로 붙었다. 트럼프 대통령은 화웨이를 제물로 삼았다. 거래제한 기업으로 지정하고 연일 맹공을 퍼붓고 있다. '반화웨이 전선'을 구축하고 공격 수위를 높이면서 초죽음을 만들 태세다. 중국과 화웨이의 반격도 만만치 않다. 이전 ZTE 때와 확연히 다른 양상이다. 결사항전을 선언하며 '맞짱'까지 각오했다.

대한민국은 좌불안석이다. 덩치 큰 두 형님 싸움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형국이다. 미국은 동맹국을 강조하며 화웨이 장비 사용을 자제하라고 빤히 쳐다본다. 무역제재에도 힘을 실어달라며 지나가는 말처럼 슬쩍 건네지만 당사자는 뜨끔하다. 중국도 노골적이진 않지만 은근히 같은 편에 서 주기를 바라는 눈치다. 화웨이는 나아가 국내 반도체 업체에 부품을 계속 공급해 달란다. 부탁인지, 협박인지 해석이 쉽지 않다. 우리만 난감하다. 속 시원하게 “이기는 게 우리 편”이라고 외치고 싶지만 마음뿐이다. 아버지를 아버지라고 부르지 못하는 홍길동 심정이다.

이 때 등장하는 요술 방망이가 바로 '국익'이다. 국익을 최우선 가치로 삼아 대응하는 게 궁극적인 해법이란다. '미국이냐, 중국이냐' 식으로 이분법으로 보지 말고 국익을 기준으로 현명하게 판단하자는 것이다. 우아하면서 멋져 보인다. 하지만 세상일이 그렇게 단순할 리 없다. 두 나라 모두 사생을 걸고 결전을 앞둔 상황이다. 국익이라는 뜻풀이도 모호해 들을 때는 솔깃하지만 곰곰이 따져보면 더 헷갈린다. 수사를 활용한 무책임한 말장난으로 들린다.

국익은 국가 혹은 국가를 이루는 국민의 이익이다. 교과서에는 국가가 추구하는 중요한 가치로 나와 있다. 정의하기 나름이지만 기준잡기가 쉽지 않다. 그래도 경제적 가치가 제일 중요해 보인다. 미국과 중국 중 누가 우리 주머니를 많이 채워줬을까. 어렵지 않다. 무역수지를 따져보면 된다. 지난해 대중국 수출규모는 1621억달러였다. 미국 727억달러와 비교해 두 배 이상 높다. 무역흑자도 중국이 앞선다. 수출에서 차지하는 비중도 중국(26.8%)이 미국(12%)보다 더 큰 시장이다. 수출입 현황만 보면 중국 편에 서는 게 이득이다.

외교와 안보 가치로 넘어가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미국의 존재는 시장 이상의 가치를 갖는다. 한미 동맹은 든든한 안보 버팀목이다. 국가 존립과 직결돼 있다. 미국은 안보를 같이 책임지는 '특별한' 나라다. 국력이 곧 경제력이라지만 안보라는 거대 담론에 기가 죽을 수밖에 없다. 여기에 정치·사회·문화적 가치까지 포함하면 국익을 위한 셈법은 더 복잡해진다.

결국 국익으로 해법을 찾기가 쉽지 않다. 국익 자체가 무의미하다. 우리에게 최선의 국익이 중국과 미국에게도 최선일 리 만무하다. 미국과 중국역시 그들 입장에서 그들의 국익이 있기 때문이다. 오히려 현실적인 입장이 바람직하다. 안타깝지만 절묘한 외줄타기가 필요하다. '양념반, 후라이드반' 같은 묘책은 없다. 꿩 먹고 알 먹고, 누이 좋고 매부 좋은 선택은 교과서 같은 이야기다.

정작 화웨이 사태의 교훈은 다른 데서 찾아야 한다. 어느 기업이든지 화웨이같은 희생양이 될 수 있다는 점이다. 중국이 '삼성'을 걸고넘어지고, 미국이 '현대'를 콕 집어서 공격한다면 감당할 수 있을까. 생각만으로도 아찔하다. 버틸만한 맷집이 있을지 궁금하다. 영원한 우방도, 영원한 적도 없는 게 국제정치다. 화웨이 전쟁은 기술패권을 위한 대리전일 뿐이다. 첨단기술에 관해서는 우리도 선진국이다. 언제든지 전쟁터로 변할 수 있다. 화웨이 사태, 그래서 더 냉정해져야 한다.

취재총괄 부국장 bjkang@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