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 게임현장을 가다]<프롤로그> 한국, 가장 뜨거운 '격전지'

대한민국 최대 게임쇼 지스타에 몰려든 인파
대한민국 최대 게임쇼 지스타에 몰려든 인파

한국은 세계보건기구(WHO) 게임장애 질병분류를 두고 사회적, 문화적 논의가 가장 활발한 국가로 떠올랐다. 게임산업계와 정신의학계가 대립각을 세운 상태에서 각종 이익단체, 시민단체가 활발하게 의견을 개진한다. 부처 간 이견으로 확전돼 국무조정실이 중재에 나서는 등 국가적 차원 문제로 다뤄지고 있다. 외신은 우리나라 사례가 향후 게임장애를 자국에 도입하는 데 이정표가 될 것으로 보고 일거수일투족을 취재수첩에 눌러담는 중이다.

냉탕과 온탕을 오가는 대한민국 게임산업은 세계에서 가장 뜨거운 감자다. 게임은 한국 대중문화 기저에 광범위하게 퍼져있다. 한국콘텐츠진흥원 2018 게임이용자행태조사 보고서에 따르면 만 10세부터 65세까지 전 플랫폼 게임 이용 여부를 조사한 결과 67.2%가 게임을 이용했다. 모바일 게임만 보면 88.3%로 국민 대부분이 게임을 이용하고 있는 셈이다.

산업적으로는 세계에 한국을 브랜딩할 수 있는 몇 개 안되는 산업 중 하나다. 대형 게임사와 글로벌 히트게임이 나왔고 세계적인 프로게이머를 가장 많이 배출하는 나라다. 한국이라는 이름을 세계에 명확하게 각인했다.

한국 게임산업은 전 세계 4위 규모 시장이다. 13조원 수준으로 6.7%를 차지한다. 1억이 안 되는 인구를 가지고 있으면서도 내수시장은 물론 해외시장까지 누빈다. 수출액은 40억달러가 넘는다. 문화콘텐츠 중 수출액이 가장 크다. 방탄소년단으로 대표되는 K팝과 대통령이 축전까지 보낸 기생충이 포함된 영화 산업보다 각각 8배, 10배 이상 외화를 벌어온다. 작년 지식재산권 적자가 역대 최소금액을 달성하는 데 게임산업이 선봉에 섰다.

한국 게임산업은 온라인 게임을 기반으로 단기간에 빠르게 성장했다. 바람의 나라, 리니지로 시작한 다중접속역할수행게임(MMORPG)은 2000년대를 관통하는 황금기를 보냈다. 아직도 해외에서는 그 당시 수출한 게임이 서비스되고 있다. 현재 세계 최고 다중접속역할수행게임(MMORPG) 관련 기술을 보유하고 있다.

게임은 사회적인 본보기를 주기도 한다. 국내 최상위권 '갑부'에 자수성가한 사람은 엔씨소프트, 넥슨, 넷마블, 스마일게이트 같은 거대 게임사 창업자들이다. 아이디어만 있으면 성공할 수 있다는 인식을 청소년과 청년층에 심어주는 롤모델 역할을 한다.

반면 사회적 시선은 차갑다. 친구들과 모여 게임을 즐기는 PC방은 오락실, 만화방, 당구장과 같은 학생 유해 요소로 취급된다. 학업을 방해하는 원흉으로 지목되고 각종 강력범죄를 유발하는 주범으로 인식된다. 살인사건이 발생하면 그 사람이 무슨 게임을 했는지부터 보도된다.

한국은 중국과 함께 게임장애를 추진한 주요국가로 꼽힌다. 한국에서 유독 게임장애와 관련한 대립이 두드러지는 이유다. 또 셧다운제라는 정책도 보유한 국가이기도 하다. 게임 주무부처 문화체육관광부가 아닌 여성가족부가 나서 게임을 규제한다. 해외 토픽으로 알려졌을 정도로 독특한 시스템을 가지고 있다.

모바일 시대에 들어와서는 양산형 게임을 마구 출시하며 이용자가 피로감을 호소하게 만들기도 했다.

WHO가 올해 5월 국제질병분류 11차 개정에서 게임장애를 질병으로 올린 후 확률형아이템에 대한 사회적 규제 움직임까지 일어나고 있다. 사행성 논란은 꾸준히 지적됐지만 게임장애를 기점으로 구체적인 시도가 눈에 띈다.

유독 한국에서 게임이 논란 중심에 서게 된 건 한국의 독특한 문화 때문이다. 입시문화와 여가활동 인프라 부족 그리고 사회환경이 원인으로 지목된다.

초고속인터넷 산업이 단시간에 발달해 기성세대와 인터넷, 모바일인터넷을 사용해온 세대를 계층으로 나눴다. 서로가 이해할 만한 연결고리가 부족한 상태다. 기성세대는 게임을 불온서적 취급하고 게임이용계층은 문화라고 항변한다. 놀 수 있는 환경이 부족한 상태에서 게임은 친구를 연결하는 매개체이자 또래 문화로 정착했다. 세대 간 갈등은 서로 이해할 능력도 생각도 없어 평행선을 그리는 실정이다.

또 대한민국은 학구열이 높은 국가다. 세계에서도 알아주는 강도 높은 학업 스트레스와 입시 열기가 청소년을 끊임없이 압박한다. 극단적으로 내몰리다 보니 도피처인 게임으로 몰렸다. 게임에서는 성취감과 자아존재감을 확인할 수 있다.

청소년은 입시 위주 교육 틀에서 여러 활동을 할 수 없고 부모 역시 치열한 경쟁에 내몰려 있어 충분한 관심을 둬 주기 어렵다. 이러한 악순환이 게임으로 과다 몰입하게 하는 환경을 만들었다.

때문에 게임장애 국내도입 국면에서 찬반 양측에 따른 소모적인 논란이 지속되고 있다. 의학계와 산업계가 서로 다른 곳을 바라보고 있어 생산적인 토론이 이뤄지지 않고 있다. 국가 차원에서 차분하게 게임 정책 입장을 표명해야 할 시기라는 지적이 나온다.

이현수기자 hsool@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