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사이버 발칸화'와 '신냉전' 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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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사이버 발칸화'와 '신냉전' 시대

미국과 무역전쟁을 벌이고 있는 중국이 러시아라는 강력한 파트너를 맞아 5세대(5G) 화웨이 네트워크 구축으로 반격에 나섰다. 중국과 러시아가 정보기술(IT) 분야에서 대미 공동전선을 구축하면서 미-중 대립에 2라운드가 펼쳐질 조짐을 보이고 있다.

지난달 미국은 화웨이를 거래 제한 명단에 올리고 동맹국에도 동참할 것을 요구했다. 이어 운용체계(OS) 안드로이드 개발사 구글을 포함한 인텔이나 퀄컴 등 주요 IT 회사도 정부 압박으로 화웨이에 접근 및 기술과 부품 공급을 중단하며 중국을 구석으로 몰아넣었다. 이를 두고 일각에서는 '신냉전' 시대의 시작으로 보고 있다.

지난 5일 해리 해리스 주한 미국대사는 서울 강남구 페이스북코리아 본사에서 열린 '클라우드의 미래' 콘퍼런스에서 “5G 이동통신은 보안 측면에서 신뢰할 수 있는 공급자를 선택하는 게 중요하다”며 5G 통신망 구축에 화웨이 장비를 사용하는 국내 통신사에 협력 중단을 에둘러 촉구했다. 주한 미국대사관은 지난해에도 '국경 없는 인터넷 속에서 디지털 주권 지키기' 토론회를 개최, 구글세 도입을 위한 '정보통신망 이용촉진 및 정보보호 등에 관한 법 개정안'과 '클라우드 산업의 서버 현지화'에 정면 반박하며 물의를 빚은 바 있다.

일명 '사이버 발칸화'는 디지털 상에서 발칸반도의 나라들처럼 영토를 서로 적대시하는 약소국가들로 분열시킨다는 뜻으로 1996년 에릭 브리뇰프슨 미국 매사추세츠공대(MIT) 교수와 마셜 밴 앨스타인 보스턴대 교수가 처음 사용한 단어다.

우리나라는 국제 사회의 양분화에 맞춰 해리스 미국대사의 촉구대로 미국 편에 서서 화웨이를 중단하거나 제2의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THAAD, 사드) 보복을 우려해 중국 편에 서야 할 지경에 이르렀다. 정부도 기업 등을 떠밀며 계속 뒷짐만 지고 있을 수는 없는 형편이다.

두 마리 고래 사이에서 새우 등이 터지지 않으려면 무엇보다 국내 IT 산업의 자체 인프라 구축이 중요하다. 화웨이는 아직 장비와 설비 구축 논쟁이 오가고 있지만 다가올 미래에는 클라우드 같은 소프트웨어(SW) 영역의 철저한 대비가 필요하다. 특히 클라우드 산업은 미국과 중국이 첨예하게 맞서고 있으며, 4차 산업혁명을 맞아 기술 패권 전쟁의 최전선을 형성하고 있다. 이는 클라우드 산업과 기술이 경제를 넘어 국가 안보에도 심대한 영향을 미치고 있기 때문이다.

클라우드는 국경을 넘어 모든 국가의 이용자 빅데이터를 각종 인공지능(AI) 학습 재료로 사용하고, 미래 기술과 서비스를 발전시킨다. 일각에서는 우리나라가 '클라우드와 빅데이터 식민지'화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데이터 주권을 지키는 데 필요한 핵심 기술인 클라우드 국내 시장을 아마존웹서비스(AWS) 등 외국계 기업에 넘겨주는 것은 몹시 위험하다. 한국은 미국과 중국 사이에 끼어 '데이터 속국' 내지 4차 산업혁명 시대의 '식민지'가 될 우려가 크다. 3차 산업혁명 때 우리 기업은 원천 기술 수준이 부족해도 발 빠른 대응으로 반도체, 휴대폰, 자동차 같은 제조업 대국으로 올라섰다. 그러나 이제는 전통 산업에 안주하면 뒤처지게 되며, 이미 시작된 IT계 '신냉전시대' 강국으로 도약할 채비를 해야 한다.

최근 국내 유력 포털 IT 회사가 수도권의 새로운 데이터센터 설립과 관련해 '지역이기주의'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보도를 접했다. 먼저 설립된 데이터센터가 있는 강원도 모 지역에서도 꾸준히 지역 사회와의 상생을 요구 받고 있다. 유해 시설과는 무관한 클라우드 데이터센터를 일부 지역이기주의에 발목이 잡혀서는 안 된다. 앞에서 언급한 클라우드 산업은 통신망과 같은 국가 기간산업으로 바라봐야 하며, 정부의 적극 지원 아래 성장하고, 경쟁력을 갖춰야 한다. 식민지 상태에서는 지난해 AWS의 디지털 정전 사태가 외교상 분쟁으로 말미암아 인위로 벌어질 수 있으며, 그때는 중국의 화웨이보다 국내 경제 산업 전반에 걸쳐 더 큰 피해를 불러들일 것이다.

황재훈 연세대 경영학부 교수 jwhang@yonsei.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