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기술이 있어 봄날은 온다

반도체 초호황이 끝나면서 관련 업체들이 보릿고개를 넘고 있다. 소자업계의 실적이 부진해지면서 장비업계와 부품·재료업계 실적도 악화일로를 걷고 있다. 일부에서는 빈약한 반도체 생태계 때문에 더 이상 성장이 어렵고, 중국의 반도체 공세가 매섭다고 걱정한다. 그러나 오히려 지금이 미래를 준비할 수 있는 훌륭한 때라는 반론도 만만치 않다.

한 반도체 장비 업체 연구원은 “(어려운) 이 시간이 위기라고 생각하지 않는다”면서 “내공을 쌓아서 미래에 새로운 시장을 노릴 수 있다”고 피력했다.

이 같은 희망과 자신감으로 엔지니어들은 밤낮 없이 새로운 원천 기술 개발에 매진하고 있다.

한 반도체 전공 교수는 오후 6시 퇴근을 잊은 지 오래 됐다. “오늘 끝내지 못한 연구를 마무리해야 한다”는 게 그의 답이었다. 이 교수는 “이곳에 있는 사람들 모두 오전 7시에 출근해서 밤 10시까지 기술 연구에 매달린다”고 전했다.

한 인공지능(AI) 반도체 스타트업 대표는 “20여명의 직원들이 AI 기술에 대한 호기심과 글로벌 수요 업체의 마음을 사로잡겠다는 열망 하나로 밤새 기술을 고민하고 있다”면서 “결과가 안 좋으면 내가 책임진다는 마음가짐으로 사활을 걸고 연구에 임하고 있다”며 비장한 각오를 내비쳤다.

이 같은 노력에 힘입어 새로운 반도체 기술이 국내에서 속속 등장하고 있다. 가격 경쟁력을 갖춘 극자외선(EUV) 노광 공정용 마스크 리뷰 장비가 나오고, 구현하기 어려운 것으로 알려진 EUV용 펠리클 시장 선점에 도전하는 업체도 등장했다. 펠리클을 개발하는 에스앤에스텍의 신철 부사장은 지난주 열린 '제2회 전자신문 테크위크'에서 “글로벌 기업보다 덩치는 작지만 기술로 밀리지 않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며 자신감을 내보이기도 했다.

이제 기술에 대한 열정으로 미래 시장에 도전하는 이들을 독려하자. 정부가 발표한 시스템반도체 육성 전략도 인력 양성 차원에서 착실히 실천해야 한다. 국가 차원에서 기술 인력을 우대하고 시장을 선점하면 언젠가 다시 올 반도체 슈퍼사이클에 대응하고, '봄날'을 즐길 수 있을 것이다.

강해령기자 kang@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