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G화학, 뜻밖에 '적과의 동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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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동박 제조업체 케이씨에프테크놀로지(KCFT)가 SKC에 인수되면서 LG화학 배터리 소재 공급망(서플라이체인)에 변화가 생길지 주목된다. KCFT는 LG화학에 배터리 핵심 소재 동박을 공급하는 협력사다.

SKC는 지난 13일 국내 동박 제조업체 KCFT 지분 100%를 1조2000억원에 인수하는 계약을 체결했다. 동박은 구리를 얇게 만든 막으로 이차전지 음극집전체로 쓰인다. 이차전지 사업을 육성 중인 SK이노베이션과 시너지를 위해 SK그룹에서 소재를 전문적으로 하는 SKC가 인수에 나섰다.

전북 정읍시에 위치한 KCFT 공장 전경(자료: KCFT)
전북 정읍시에 위치한 KCFT 공장 전경(자료: KCFT)
이차전지 음극집전체로 쓰이는 동박 모습(자료: KCFT)
이차전지 음극집전체로 쓰이는 동박 모습(자료: KCFT)

그런데 이 인수로 묘한 역학 관계가 만들어졌다. LG화학 이차전지 분야 오랜 협력사였던 KCFT가 경쟁사로 넘어간 것이다.

KCFT는 LS엠트론의 동박·박막사업부가 전신이다. LS그룹이 재무구조 개선을 위해 사모펀드에 사업을 매각하면서 KCFT가 탄생했다. LG에서 계열 분리한 LS그룹 특성상 LS엠트론의 동박사업, 즉 KCFT 동박은 LG화학과 깊은 협력 관계를 맺어왔다.

업계에 따르면 KCFT 최대 고객사는 LG화학이다. LG화학 역시 KCFT에서 가장 많은 양의 동박을 공급 받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이런 구도에 변화가 불가피해졌다. KCFT가 SK그룹의 일원이 된 만큼 LG화학이 현재와 같은 관계를 유지하기는 부담이다. 경쟁사인 SK의 배터리 경쟁력 강화를 후방 지원하는 셈이 되고 KCFT를 통한 정보 유출 가능성도 LG화학 입장에서는 우려스런 대목이다.

가뜩이나 LG화학과 SK이노베이션은 배터리 사업 경쟁에 기술유출 소송으로 갈등 골이 깊어진 상태다.

LG화학의 고민은 KCFT와 당장 협력 관계를 끊기 힘들다는 데 있다. 동박은 만들기가 매우 까다롭고 제조할 수 있는 곳도 전 세계적으로 매우 한정된 것으로 알려졌다.

배터리 소재업체 관계자는 “배터리용 동박을 공급할 수 있는 곳은 국내 KCFT와 일진머티리얼즈, 대만 창춘그룹, 중국 몇 개 회사 정도에 불과하다”고 밝혔다.

이 중에서도 고품질이 요구되는 전기차 배터리용 동박은 KCFT와 일진머티리얼즈가 주도하고 있다는 평가다.

LG화학은 KCFT뿐만 아니라 일진머티리얼즈에서도 동박을 공급 받고 있어 KCFT 매각으로 향후 서플라이체인을 조정한다면 일진머티리얼즈와 협력을 확대할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일진머티리얼즈는 삼성SDI와 긴밀하고 공급능력(CAPA)도 제한적이다. 일진머티리얼즈는 최근 말레이시아에 공장을 짓는 등 적극적인 증설에 나서 있는데 LG화학과 협력이 확대되는 결과로 이어질지 주목된다.
업계 관계자는 “LG화학뿐만 아니라 KCFT 입장에서도 달라진 상황이 고민”이라며 “LG화학이나 KCFT 모두 당분간 계약대로 비즈니스를 진행하겠지만 향후에는 변화가 불가피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LG화학 직원들이 전기차 배터리를 점검하고 있는 모습(자료: LG화학)
LG화학 직원들이 전기차 배터리를 점검하고 있는 모습(자료: LG화학)

윤건일 전자/부품 전문기자 benyun@etnews.com, 정현정 배터리/부품 전문기자 iam@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