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의도칼럼]블라디보스토크에 주목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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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영길 더불어민주당 의원
<송영길 더불어민주당 의원>

하늘을 날아다니는 새는 자유롭지만 분단된 한반도에서 살고 있는 우리는 지정학적 숙명을 짊어지고 산다. 이달 초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열린 동북아 초국경 경제포럼에 기조발제를 위해 다녀왔다. 대륙으로 연결된 반도 국가임에도 사방이 막힌 '강요된 섬' 한국의 처지는 비행시간에서도 여실히 알 수 있었다. 북측 항로를 이용하는 러시아 비행기에 비해 우리나라 국적 항공기는 서해를 빙 돌아서 약 40분 더 날아가야만 했다.

블라디보스토크를 다녀온 소감은 우리 사회가 100년 전 그레이트 게임을 연상케 하는 '동북아 발(發)' 지리상의 대전환기를 맞고 있다는 점이다. 청일전쟁과 러일전쟁 한복판에 선 구한말 조선은 강대국의 합종연횡 속에서 속절없이 흔들려야만 했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최근 미·일 동맹 및 중·러 협력 강화, 러시아의 크림반도 합병과 이에 대한 서방의 제재, 남중국해에서 중국 인공섬의 군사기지화 등을 보면 러일전쟁 전야와 비슷한 상황을 연상케 하는 듯 한반도 주변에서 제2의 그레이트 게임이 본격화되는 것처럼 여겨진다.

100년 전 러일전쟁 당시 고종황제는 영세중립국을 선언했지만 철저히 무시됐다. 경제·군사력에 의해 뒷받침되지 못한 중립 선언은 실효성을 획득하기 어렵다. 고종황제 때는 그래도 남북이 분단되지는 않은 상태였다. 그러나 지금 한반도는 남북이 분단된 상태여서 외교 관계 해법을 찾는 데 어려움이 더 크다.

이 위기를 벗어날 해법은 무엇일까. 어려움이 클수록 반전 효과도 크다. 문재인 대통령의 외교 전략 가운데 하나인 신북방정책에 그 해법이 있다고 본다. 그 중심지는 블라디보스토크라 생각한다.

블라디보스토크에 주목하는 이유는 두 가지다.

첫째는 1999년 이후 20년째 러시아를 이끌고 있는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의 신동방정책 때문이다. 알다시피 1700만㎢가 넘는 세계 최대 면적의 국가인 러시아는 유럽과 아시아 대륙에 걸쳐 있지만 그 중심은 그동안 유럽에 치우쳐 있었다.

로마황제 시저의 러시아식 발음인 짜르를 자처한 이반3세(1462~1505년)는 모스크바를 '제3의 로마'로 선언했다. 아시아적 러시아를 유럽화시킨 표토르 대제는 1703년부터 발트해를 바라보는 네바강 늪지대를 매립해 상페테르스부르그(표토르의 성)를 건설, 수도를 모스크바에서 상페테르스부르그로 옮겼다. 이후 모스크바가 다시 러시아의 수도가 되는 데에는 200년이 넘는 시간이 필요했다. 1917년 볼세비키 10월 혁명을 통해 집권한 소비에트정권은 1918년 수도를 모스크바로 옮겼고, 지금도 러시아의 수도는 모스크바다.

상페테르스부르그와 모스크바 간 거리는 약 700㎞다. 최남단에서 최북단까지의 직선 길이가 1178㎞인 한반도를 사는 우리에게는 먼 거리다. 동서길이 9000㎞에 달하는 러시아에게는 비교적 짧은 길이다. 500년 이상 러시아의 중심은 유럽에 치우쳐 있었다.

그러나 지금 러시아는 변방이던 블라디보스토크에 쏟고 있는 관심이 대단하다.

블라디보스토크는 '동방을 정복하다'라는 의미다. 중국의 제2차 아편전쟁 때 영불 연합군에 가담한 러시아가 1860년 베이징조약을 통해 100만㎢ 이상의 영토를 청나라로부터 할양받아 영토로 편입시켰다. 그래서 중국 사람이 들으면 기분이 그다지 좋지 않은 이름이다. 청나라 때 해삼위로 불리던 곳이다.

블라디보스토크는 태평양에 접한 러시아 동쪽 영토인 극동러시아 지역의 최대 도시다. 제국주의 군사요충지로, 1990년대까지는 일반인의 접근조차 쉽지 않았다. 그러나 지금은 푸틴 대통령이 야심만만하게 추진하고 있는 극동개발·신동방정책 추진의 전진기지로 변모했다. 시베리아 횡단철도의 출발점이자 북극항로 연결 항구로, 가히 문재인 정부 신북방정책의 출발점이라 할 수 있다.

둘째 블라디보스토크는 한국·러시아 간 교류 공간이다. '가까운 유럽' 블라디보스토크를 무대로 한 한국의 방송 프로그램은 큰 인기를 얻었다. 이후 블라디보스토크를 찾는 한국인은 2016년 5만명, 2017년 10만명에서 지난해 22만2000명으로 급증했다.

한·러 양국 간 경제 교류 확대를 위한 제도 장치 마련 역시 블라디보스토크를 중심으로 한다. 러시아는 2014년 최남단에 위치한 항구 도시 블라디보스토크를 자유무역지대로 조성하고 '신동방정책'의 핵심 지역으로 삼고 있다.

한·러 양국은 지난해 6월 자유무역지대 설치 공동성명에 서명한 데 이어 지난 18일에는 강경화 외교부 장관과 세르게이 라브로프 러시아 외무장관이 투자와 서비스 무역을 위한 자유무역지대협정 회담을 본격화하기로 공식 합의했다.

특히 2015년부터 블라디보스토크에서 개최되는 동방경제포럼(EEF)은 대한민국이 적극 활용해야 할 플랫폼이다. 나중에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까지 참여시켜 남·북·중·러 협력에 일본을 참여시키는 동북아 경제 번영 전략으로 발전시켜야 한다.

부동항으로서 역할에도 주목해야 한다. 유엔의 대북 제재에서 북한 여행은 제재 대상이 아니다. 블라디보스토크에서 금강산-원산-울릉도-포항-부산-후쿠오카와 인천, 상하이를 연결하는 동북아 크루즈를 당장 실행하는 것도 고민해야 한다. 창의 해법이 어느 때보다 절실하다.

송영길 더불어민주당 의원(인천계양을·민주당 동북아평화협력특별위원장·대통령직속 북방경제협력위원회 특별고문) SONGYOUNGGIL@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