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T단상]숲을 바라보며 나무를 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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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환 재료연구소 소장.
<이정환 재료연구소 소장.>

일을 할 때 목표와 범위를 정하고 시야를 넓히는 작업이 매우 중요하다. 대개 일의 시작은 일의 분량을 정하고, 추진 계획을 수립하는 것이다.

여기서 일을 대하는 두 가지 인식이 존재한다. '나무'를 보며 일하느냐와 '숲'을 보며 일하느냐다.

'나무'를 보며 일하면 일의 세세함까지 들여다볼 수 있다. 그만큼 실수가 줄고, 업무의 장단점 이해와 성과 달성률을 높일 수 있다.

반면에 '숲'을 보며 일하면 일의 범위와 전체 맥락을 알고 접근해서 일의 능률을 높이고, 업무력 향상에 도움이 된다.

이렇게 얘기하면 두 가지 방법이 모두 장점만 있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다. 그러나 이를 뒤집어 보면 단점도 존재한다. 그렇다고 두 방식 모두 '이런들 어떠하리 저런들 어떠하리'를 주장하는 건 아니다. 좀 더 효율 높게 일하는 방법을 찾자는 얘기다.

단점을 최소화하고 장점을 최대화하는 효율성 높은 방법은 무엇일까. 필자는 지금 어떤 방법을 택하느냐보다 어떤 순서로 일을 진행할 것인가를 얘기하고자 한다.

필자가 근무하는 연구소는 기술 성과 전시회에 자주 참가한다. 다양한 분야를 다루는 전시회는 시간과 비용 측면에서 효율 높고 파급 효과도 높은 마케팅 수단이다.

최근 일본 오사카에서 열린 고기능성 소재 전시회에 참가했을 때 국내 전시회와 다른 몇 가지 차이점을 느꼈다.

첫째 관람객이 부스 방문 후 기술을 대하는 태도다. 국내 전시회 관람객은 대부분 전시된 기술에 접근하는 데 소극으로 임하는 경우가 많다. 관심은 높아 보이지만 선뜻 부스로 다가와서 전시품을 만져 보거나 질문을 하지 않는다. 겉을 맴돌며 브로슈어만 수집하는 이가 대부분이다.

오사카 전시회 관람객은 달랐다. 예의 바른 선진국으로 잘 알려진 것처럼 기술을 대하는 태도가 무척 진지했다. 우리 연구소의 기술을 이미 어느 정도 이해하고 찾아와서 다른 기술과의 차별성을 줄기차게 질문하는 관람객 한 명 한 명의 모습에서 국내와는 다른 차이를 여실히 느꼈다.

둘째 상담한 기업들은 이미 비슷한 기술이나 장비를 구비했거나 사용하고 있어서 수요만 맞아떨어진다면 새로운 기술을 도입할 확률이 매우 높았다. 국내 기업은 상담 과정에서 정부 지원 사업을 공동으로 수행할 수 있는지, 연구소의 기업 지원은 가능한지 여부를 묻는 경우가 많다. 신기술이나 제품에 접근하는 기반부터 다르다는 점에서 경쟁력이 부족한 국내 소재 산업 현황에 아쉬움이 더했다.

셋째 국내 전시회 때는 주최 측이 바이어를 데리고 우리 부스를 찾아주길 기다렸다. 그러나 오사카 전시회는 부스별로 오랜 시간 지속된 사전 홍보와 소통이 이뤄졌다. 바이어는 사전에 스스로 많은 정보를 파악한 후 부스에서 꼼꼼하게 상담했다. 부러운 부분이 아닐 수 없었다.

우리는 지금까지 '국내'라는 한 그루의 '나무'에 집착해서 '세계'라는 주변의 '숲'을 볼 기회를 갖지 못한 것은 아닐까. 이제는 세계 기술과 산업 현장이 어떤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는지를 염두에 두고 우리만의 '나무'를 길러 나가야 할 시기다.

필자가 현장에서 느낀 다양한 차이점은 한 국가의 문화와 민족·교육 환경, 개인 성향 차이 등 다양한 측면에서 발생한다. 그럼에도 우리나라 역시 변화와 혁신이 필요함은 두 말할 나위가 없다.

세계는 온라인과 첨단 교통 수단으로 네트워크를 이뤄 국가 간 경계가 사라졌고, 거미줄처럼 연결된 사회로 변한 지 오래됐다.

기술 습득에 미적지근한 태도는 어울리지 않는다. 세계가 너무 빨리 변하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 이전에 세계를 먼저 주시해야 한다. 세계를 알아야 기술을 알고, 기술을 이해해야 우리를 이해할 수 있다. 세계라는 숲을 바라보며 우리만의 나무를 심어야 할 때다.

이정환 재료연구소장 ljh1239@kims.re.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