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재민 교수의 펀한 기술경영]<172>경계지향혁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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흰색 커튼이 바람에 나부낀다. 커튼 사이로 벚꽃나무가 섰다. 하얀 듯한 분홍 꽃잎이 바람에 흐드러져 날린다. 열린 창문으로 한 여인이 숨을 들이마신다. 꽃향기다. 꽃잎을 두 손 가득 담아 머리 위로 흩뿌린다. 갖은 색상의 꽃잎이 날린다.

어느 가정용 방향제의 30초짜리 광고다. 요즘은 흔하지만 당시로선 자동 분무 기능을 갖춘 참신한 '프레시매틱'이라는 제품이다. 광고는 당신이 하루 종일 마치 벚꽃나무 정원에 서 있듯, 인도의 어느 꽃 축제에 와 있듯 느끼게 될 것이라고 말한다.

@게티이미지뱅크
<@게티이미지뱅크>

이 단순해 보이는 제품에는 숨겨진 얘기가 하나 있다. 이 제품은 에어위크뿐만 아니라 모기업인 레킷벤키저를 통틀어도 가장 성공한 히트 상품이 됐다. 그러나 정작 제품 출시조차 쉽지 않았다. 아이디어부터 본사 브랜드 기획 부서 작품이 아니었다. 공교롭게도 한국지사의 한 브랜드 매니저에게서 나왔다.

영국 슬라우에 본사를 둔 이 유서 깊은 소비재 제품 기업에 전자기기를 부착한 방향제는 가 본 적 없는 지평이었다. 굳이 이 경계선을 넘어야 할까. 오래된 고상한 관행을 깨야 할 필요가 있을까. 바르트 베흐트 전 최고경영자(CEO)는 다음과 같이 회고한다. “이 제품을 개발하기로 정한 데는 모든 경영진이 동의해서가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분명 새로운 것이라는 일종의 열정이었습니다.” 기업 성장 과정은 비스듬히 누운 'S자 곡선'를 닮았다. 처음에는 더디지만 모멘텀이 찾아오면 빠르게 성장한다. 그러나 어느 순간 모멘텀은 사라지고 정체가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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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는 이것을 자연법칙처럼 여긴다. 어찌 보면 문젯거리도 아니다. 모든 기업이 '일신우일신'하고 지속 성장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새 혁신 기업을 위해 자리를 비켜 주는 것은 조지프 슘페터 교수가 주창한 이상향에 오히려 가깝다.

그러나 이것은 기업 입장에서 함정임에 분명하다. 이것을 숙명처럼 수긍하는 순간 이 S커브라고 불리는 이것은 정점을 스쳐 천천히 나락으로 이끈다.

이 함정을 극복하는 방법이 있을까. 전략은 두 가지다. 첫째는 성장이 정체에 들어서기 전에 새로운 모멘텀을 찾아서 옮겨 타는 것이다. 오래된 곡선의 끝부분을 잇듯 새 곡선을 시작해야 한다. 두 번째 전략은 반대다. 기존의 S자 곡선을 더 높이 들어 올리는 방법이다. 비록 새롭고 분명한 성장 사업이 보이지 않더라도 경계를 넓힐 수 있다.

지금 누가 봐도 상식이 된 자동분무기란 것은 방향제를 지극히 초보 형태인 전자제품에 끼워 넣은 것이다. 그러나 이마저도 에어위크는 정체성을 고민해야 했다. 크리스토퍼 콜럼버스의 달걀처럼 성장 한계를 넓히는 혁신은 쉬워 보이지만 가 본 적 없는 첫 발자국은 두렵기 마련이다. 더욱이 어느 이름 모를 직원의 제안이라면 C스위트의 두려움은 커진다.

혁신은 경계선을 말한다. 한계가 없다면 혁신은 무가치하다. 경영 구루들은 혁신을 말하면서 공간과 차원이란 단어를 사랑했다. 혁신은 공간과 차원의 알려진 한계에서 시작된다. 가치 없다고 버려진 공간과 일상의 공간 속에 숨겨진 차원은 분명 있다.

당신이 혁신을 바란다면 경계에 서 보라. 경계 지향 혁신은 혁신을 찾는 세 번째 눈을 당신에게 허락할지 모른다.

박재민 건국대 기술경영학과 교수 jpark@konkuk.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