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일본 수출 통제목록 분석해 보니…日 전략물자 증착기에 차세대 웨이퍼 등 첨단산업 전방위 포함

SiC 기반 전력반도체 웨이퍼
SiC 기반 전력반도체 웨이퍼

일본이 우리나라를 '화이트리스트'(우대국)에서 제외하겠다고 밝힌 수출무역관리령 통제 목록이 반도체 부품·장비는 물론 핵심 산업 분야를 대거 포함한 것으로 확인됐다. 반도체 핵심 공정에 필수인 증착 장비, 차세대 웨이퍼와 함께 공작기계·탄소섬유까지 통제 목록 대상으로 분류됐다. 일본 정부가 예고대로 우리나라를 화이트리스트에서 제외하면 반도체, 디스플레이를 넘어 사실상 전 산업군의 소재·부품·장비 수출 통제를 무기로 한 전방위 공세가 예상된다.

9일 전략물자관리원이 일본 수출무역관리령을 바탕으로 분석한 전략물자 통제 목록에 따르면 증착 장비와 차세대 웨이퍼 등 반도체 핵심 장비·부품이 대거 포함됐다.

일본 정부가 수출무역관리령 별표 1~15항에 지정한 통제 목록에는 원자력과 화학무기 관련 소재·부품은 물론 첨단소재, 소재가공, 전자컴퓨터 등 산업 분야가 포함됐다. 그 가운데 반도체 제조 장비도 다수 포함된 것으로 확인됐다.

일본 경제산업성은 지난 1일 '외국환 및 외국무역관리법'(외국환관리법)에 따른 '수출무역관리령'을 다음 달 개정할 것이라고 예고한 바 있다. 법이 개정되면 우리나라는 군사 전용 가능성이 있는 품목의 수출 허가 신청을 면제하는 화이트리스트에서 제외된다. 일본 정부가 통제 목록 품목을 우리나라에 수출할 때 일일이 당국의 승인을 받아야 한다. 수출 지연은 물론 수출 제한 조치까지 이어질 수 있다.

소재가공 분야의 통제 목록을 다룬 수출무역관리령 6항에서는 맥동 화학기상증착법(CVD), 핵형성제어열증착(CNTD) 등 반도체 증착용 장비를 통제 목록에 포함시켰다. 증착 공정은 웨이퍼 위에 얇은 막을 쌓는 과정을 말한다. 반도체는 회로를 새기는 작업을 여러 번 반복하면서 만든다. 웨이퍼 위에 막을 겹겹이 씌우면서 다양한 회로를 그려 넣기 때문에 증착은 반도체 공정에서 필수 작업이다. 일본 대표 장비 업체 도쿄일렉트론(TEL)은 타이타늄(Ti), 타이타늄나이트라이드(TiN) 등을 활용한 메탈 CVD 장비에서 독보적 위치를 점하고 있다.

전형탁 한양대 교수는 “메탈 CVD 분야의 90% 이상은 도쿄일렉트론이 주도하고, 국내 장비사들에 비해 정교하고 빈틈없는 기술을 구현하고 있다”고 말했다.

함께 언급된 '스퍼터링' 증착 장비도 눈에 띈다. 스퍼터링은 특정 기체를 웨이퍼와 충돌시켜 막을 형성하는 차세대 증착 기술이다.

전 교수는 “국내 디스플레이 업계에서 일본 스퍼터링 증착 장비를 활용하고 있다”면서 “일본 알박(Ulvac)이 다수 물량을 공급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이 밖에 반도체에 전기를 통하게 하기 위해 이온을 주입하는 '이온 주입 장비'도 포함됐다. 일본이 높은 기술을 구현하는 분야로 꼽힌다.

이와 함께 일본은 '반도체 소자, 집적회로(IC)나 반도체 물질의 생산용 장비·시험장치 또는 이들의 부분품·부속품'이라는 수출령으로 반도체 부품도 광범위하게 규제한다. 블랭크마스크는 호야와 아사히글라스, 웨이퍼는 신에쓰와 섬코 등 일본 기업이 관련 분야에서 1·2위를 달리고 있다.

구상모 광운대 교수는 “실제 산업 현장에서 쓰이는 실리콘(Si) 웨이퍼와 함께 '질화갈륨(GaN) '실리콘카바이드(SiC)' 웨이퍼 등 제품으로 쓰이는 전방위 부품을 규제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면서 “대부분 미국 등 다른 나라에서 구할 수 있는 부품이지만 일본이 '준'독점하거나 일본 핵심 장비에 스펙을 맞추는 경우가 많아 국내 업계에 영향이 있을 것”이라고 전했다.

반도체 제조장비는 우리나라가 일본에서 수입하는 품목 가운데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한다.

한국무역협회가 올해 1~5월 품목별 우리나라 대일본 주요 수입(MTI 6단위 기준)을 분석한 자료에 따르면 반도체 제조용 장비가 12억1200만달러로 가장 많은 규모를 차지했다. 기타 개별소자 반도체는 4억1000만달러, 실리콘 웨이퍼는 3억8500만달러로 각각 9번째 및 10번째로 규모가 컸다. 이들 품목 전체 수입 가운데 일본이 차지하는 비중은 반도체 제조용 장비 33.8%, 기타 개별소자 반도체 32.9%, 실리콘 웨이퍼 38.7%다. 수입 물량 가운데 3분의 1을 일본에 의존하는 셈이다.

일본은 공작기계와 탄소섬유 등 일본 정부가 수출 규제 조치에 포함할 것으로 알려진 품목도 전략물자 통제 목록에 명시했다. 일본 수출무역관리령 제5항 18에서는 탄소섬유, 수출무역관리령 제6항 2에는 수치제어 공작기계를 각각 명시했다.

산업통상자원부는 일본이 법령으로 관리하는 전략 물자가 1112개에 이르는 것으로 공식 파악했다. 민간용 전략 물자 261개, 비민간용 전략 물자 851개다. 일본은 우리나라를 화이트리스트 국가에서 제외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 수출무역관리령을 다음 달 1일 개정할 계획이다. 8월 20일쯤이면 개정된 법령이 시행될 예정으로 있다. 법령이 시행되면 우리나라로 수출하는 개별 품목에 대해 일일이 일본 당국의 승인이 있어야 한다.

<표>한국의 대일본 주요 수입품목(MTI 6단위 기준) (단위:백만달러, %)


자료: 한국무역협회

[단독]일본 수출 통제목록 분석해 보니…日 전략물자 증착기에 차세대 웨이퍼 등 첨단산업 전방위 포함


변상근기자 sgbyun@etnews.com, 강해령기자 kang@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