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라인]황희 정승을 인사청문회에 세운다면

글자 작게 글자 크게 인쇄하기
[데스크라인]황희 정승을 인사청문회에 세운다면

조선시대 최고 재상을 들라면 황희 정승을 첫 손에 꼽는다.

황희는 구순(아흔 살)을 사는 동안 56년 동안 관직 생활을 하면서 24년 동안 재상직에 있었고, 그 가운데 18년 동안은 영의정으로 지냈다.

'세종 같은 임금에 황희 정승'이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세종과 함께 조선시대 태평성대를 이룬 명재상이다. 맹사성 같은 인물이 늙어서도 좌의정에 머물 수밖에 없은 이유도 황희가 영의정으로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황희는 세종조를 통틀어 가장 오래 재상을 지냈을 뿐만 아니라 재물이나 명예욕이 없어서 '청백리'로도 알려져 있지만 사실은 조금 다르다. 황희는 청백리가 아니었다.

24년 동안 재상 자리에 있으면서 조정의 모든 일을 관장한 황희는 일을 전부 공평무사하게 처리했고, 세종에게 충성을 다함으로써 조선 최고의 태평성대를 일궈 내는 데 큰 역할을 했다.

그러나 권력의 중심부에 있던 황희는 그 누구보다 비리 사건으로 탄핵을 많이 받은 인물이기도 했다.

조선왕조실록에는 황희가 사간원과 사헌부의 단골 '탄핵 대상' 가운데 한 명으로 보일 정도로 많은 비리 사건이 기록돼 있다. 비리도 다양했다. 뇌물수수, 관직 알선, 사위인 서달이 저지른 살인 사건 무마는 물론 간통 논란까지도 있었다.

오늘날 검찰총장 역할인 대사헌 시절에는 황금을 뇌물로 받았다는 소문이 파다해 '황금 대사헌'이라는 별명으로 불릴 정도로 부패의 대명사였다고 한다.

이 밖에도 수많은 비리 사건에 연루돼 의금부 등에서 고초를 겪은 것도 여러 번이다.

그럼에도 황희가 조선시대 최고 재상으로 꼽히는 것은 그의 탁월한 정치적 능력 때문이다.

황희는 최고 자리인 영의정이었을 때도 회의석상에서 먼저 입을 여는 법이 없었다고 한다. 다른 이들의 말을 두루 듣고서 마지막에야 과거의 적절한 사례를 곁들여 종합 의견을 개진했다. 그러다 보니 틀리는 법이 적었고, 임금의 신뢰도 더불어 올라갔다는 것이다.

어느 역사학자의 말을 빌리면 황희는 '행정의 달인'이자 '외교의 사전(事典)'이라고 평했다.

최근 검찰총장 인사청문회가 있었다. 무난할 것 같던 청문회는 변호사 알선에서 위증 논란까지 번졌다.

인사청문회는 후보자를 검증하는 자리다. 후보자의 과거 문제도 살펴봐야 하고, 결격 사유가 발견되면 지적도 해야 한다. 그리고 후보자는 제기된 문제에 대해 명확하게 해명하고 거짓 없이 답변해야 한다. 또 과거에 대한 검증뿐만 아니라 후보자가 과연 그 역할을 잘 해낼 수 있을지, 산적해 있는 현안 해결에 적합한 인물인지를 알아보고 파악해야 한다.

전자와 후자가 적절하게 이뤄져야 이상적인 인사청문회다. 굳이 무게 중심을 따지라면 과거보다 미래에 방점을 찍어야 한다. 지금의 인사청문회에는 '검증'보다 '정쟁'만 있는 것 같다. 그 직(職)을 잘 수행할 수 있느냐는 논외다. 이렇다 보니 인사청문회 '무용론'까지 나온다.

지금의 여당도 야당 시절에 크게 다르지 않았으니 여야를 막론하고 잘잘못을 따질 수도 없다. 언젠가는 그 고리를 끊어야 한다.

조만간 공석인 공정거래위원장직을 비롯해 몇개 부처의 개각이 예상된다. 흠 없고 능력 있는 사람이 최선이지만 항상 최선의 선택지만 존재하지는 않는다. 황희 정승이 이 시대의 인사청문회에 섰다면 어땠을까.

홍기범 금융/정책부 데스크 kbhong@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