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스닥 상장 문턱 낮아지며 VC '투자-회수' 주기도 단축

창업기업에 초기 단계부터 투자해 온 벤처캐피털(VC)이 기업공개(IPO)를 통해 자금 회수까지 걸리는 기간이 크게 짧아진 것으로 나타났다. 과거 평균 12년이 걸리던 '투자-회수' 주기가 4~5년 수준으로 짧아진 사례가 속속 등장하고 있다. 코스닥 상장 문턱이 낮아지면서 모험자본의 선순환에도 속도가 붙기 시작했다는 평가다.

ⓒ게티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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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지난해 말부터 올해 상반기까지 코스닥 시장에 신규 상장한 기업 가운데 초기 투자를 받은 지 5년도 지나지 않아 IPO에 성공하는 사례가 잇따르고 있다.

12일 상장하는 세틀뱅크는 벤처 투자 이후 2년 만에 코스닥 시장에 입성했다. 펀드를 통해 세틀뱅크 지분 36%를 보유하고 있는 프리미어파트너스는 2016년 인수합병(M&A)을 전제로 세틀뱅크에 투자했다.

이달 코스닥에 상장하는 언어 빅데이터 기업 플리토 역시 2012년 창업 직후 투자 유치를 개시해 약 7년 만에 상장을 통한 회수를 기대하고 있다.

지난해 코스닥 시장에 입성한 베스파와 네오펙트, 에이비엘바이오 등도 첫 투자부터 IPO까지 5년이 걸리지 않았다.

게임회사 베스파는 2015년 VC로부터 11억원 투자를 받아 지난해 12월 코스닥 시장에 상장했다. SL인베스트먼트와 소프트뱅크벤처스는 2015년 각각 5억원, 6억원을 투자한 데 이어 2016년 5억원, 3억원을 추가로 투자했다. 약 1년여 기간 동안 총 3개 VC에서 34억원을 투자했다.

중소벤처기업부에 따르면 이 기간 동안 2016년 1억원에 불과했던 베스파 매출은 2017년 311억원, 2018년 1248억원으로 급성장했다.

에이비엘바이오는 창업 이후 3년도 지나지 않아 IPO에 성공했다. 특히 한국투자파트너스는 2016년 초기 단계부터 60억원 규모 대규모 투자에 나섰다. 2016년 2월 설립된지 1개월여 만에 초기투자를 받아 2년간 총 4개 VC로부터 255억원을 유치했다. 2018년 12월 기술성 평가를 통해 코스닥 시장에 안착했다.

재활의료기기 제조업체 네오펙트는 2014년 시리즈A 투자 유치 이후 4년 만에 코스닥에 입성했다. DSC인베스트먼트와 컴퍼니케이파트너스가 각각 5억원을 투자한 이후 2015년, 2016년 두 차례에 걸쳐 추가 투자가 이뤄졌다. 시리즈A부터 네오펙트에 투자한 DSC인베스트먼트는 8억원과 5억원을 각각 추가로 투자했고, SBI인베스트먼트는 2015년 12억5000만원, 2016년 10억원을 추가로 투자했다.

투자 이후 회수까지 평균 12년이 걸리던 과거와는 확실히 달라진 분위기다. 벤처캐피탈협회에 따르면 2011~2015년 당시 VC 투자 기업이 IPO까지 소요되는 기간은 평균 12.9년에 달했다. 약 3~4년 만에 투자에서 회수까지 이르는 주기가 절반가량 단축된 셈이다.

상장 이후 기업 주가 상승 등 활성화는 숙제로 남았다.

작년 말 상장한 기업에 투자한 VC 가운데 대다수는 아직까지 회수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상장 이후 기업 주가가 좀처럼 상승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는 “VC가 지분을 다량 보유한 경우 상장 이후 시장에서 지분을 매각하기 보다는 일정 부분 구주매출을 유도해 주가 변동의 불확실성을 조정하고 있지만 기대만 못한 것은 사실”이라면서 “VC 입장에서도 상장 이후 대량 매각에 나설 경우 평판에 악영향을 줄 수 있는 만큼 주가 상승을 기다리는 수 밖에는 답이 없다”고 전했다.

실제 베스파에 초기 투자한 SL인베스트먼트와 소프트뱅크벤처스, 솔본인베스트먼트 등은 1분기 현재까지도 베스파 지분을 유지하고 있다. 지난해 상장한 네오펙트 역시 주가 부진 등으로 인해 VC가 쉽사리 장내 매각에 나서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벤처투자업계 관계자는 “상장을 했다고 해서 즉시 지분을 매각하는 것은 상장기업에도 VC에도 서로 도움이 되지 않는 만큼 피투자기업의 성장을 지속 지원하는 것이 중요하다”면서 “IPO 이후에도 일반 투자자도 추가 주가 상승을 기대하고 자연스럽게 기관투자가와 손바뀜이 일어날 수 있도록 코스닥 시장 자체의 경쟁력을 높이는 것이 정부가 추진해야 할 일”이라고 조언했다.

유근일기자 ryuryu@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