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일 경제전쟁] 日 “내달 韓 화이트국가 제외 강행”…국내 산업 넘어 세계 경제 볼모 잡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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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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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정부가 내달 우리나라를 '화이트국가(우대국)'에서 제외하겠다는 방침을 재확인하면서 한일 양국은 물론 세계 경제에도 파장이 예상된다. 일본이 실제 행동에 나서면 반도체·디스플레이·공작기계 등에 쓰이는 주요 소재부품은 물론 첨단소재·항법 장치·센서 등 무려 1112개에 이르는 품목이 일본 수출규제 영향권에 든다. 일본은 앞서 수출규제 조치를 실시한 포토레지스트·불화수소·불화폴리이미드에 이어 반도체 웨이퍼까지 규제 대상에 포함시킬 전망이다. 공작기계·탄소섬유도 전체 품목을 제한할 근거가 마련된다. 일본이 우리나라를 향한 수출 제한 품목을 확대하면 세계 주요 산업의 글로벌 밸류체인(공급망)도 타격이 불가피하다. 미·중 무역분쟁으로 세계 경제가 침체된 와중에 세계 경제에 다시 한 번 찬물을 끼얹을 가능성이 크다.

14일 정부에 따르면 일본 경제산업성은 지난 12일 도쿄에서 열린 한일 전략물자 수출통제 담당 실무자 간 양자 협의에서 우리나라를 안보상 수출 우호 국가인 화이트리스트에서 제외하겠다는 방침을 재확인했다.

일본 정부는 지난 1일 우리나라를 화이트리스트에서 제외하기 위한 의견 수렴 절차를 시작하겠다고 공표한 바 있다. 이후 10여일 만에 이뤄진 양국간 첫 실무 협상에서 우리나라를 화이트리스트에서 제외하겠다는 의사를 다시 한 번 전달하며 수출 제한 품목 확대 의지를 분명히 했다.

우리나라가 화이트리스트에서 제외되면 일본 정부가 군사 전용 가능성이 있다고 지정한 통제 목록 품목을 수입할 때 일본 당국 승인을 일일이 받아야 한다. 수출 심사 지연은 물론 안보상 이유로 수출 제한도 가능하다.

산업통상자원부는 일본이 법령으로 관리하는 전략 물자가 1112개에 이른다고 공식 파악했다. 민간용 전략 물자 261개, 비민간용 전략 물자 851개다.

전략물자관리원이 일본 수출무역관리령을 바탕으로 분석한 전략물자 통제 목록에 따르면 일본은 수출무역관리령에서 총 16항으로 나눠 수출 통제 품목을 구성했다. 여기에는 무기·원자력·화학무기·생물무기·미사일 등 군사 전용 품목도 있지만, 첨단소재·소재가공·전자·통신·센서 등 산업과 밀접한 분야도 많다.

특히 일본 정부는 수출무역관리령에서 반도체 공정에 필수인 웨이퍼와 관련 장비도 통제 목록에 포함했다. 우리나라를 화이트리스트에서 제외하면 이들 품목 수출 제한도 가능한 셈이다.

웨이퍼는 반도체 회로를 새기는 동그란 원판이다. 반도체 제작에 꼭 필요한 부품이다. 일본 신에츠화학과 섬코가 세계 시장 주도권을 잡고 있다.

일본 정부는 반도체 웨이퍼에 얇은 막을 쌓는 증착 공정에 필요한 장비도 규제 품목에 올렸다. 화학기상증착기(CVD), 물리기상증착기(PVD), 스퍼터링 장비 등은 많은 회로를 새겨야 하는 반도체 제조 공정 특성상 반드시 필요하다. 특히 메탈 CVD 분야에서는 일본 장비업체 도쿄일렉트론(TEL)이 90% 이상 점유율을 확보하고 있다.

구상모 광운대 교수는 “반도체 관련 소재 부품을 전 방위로 규제하고 있어 문제가 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일본은 수출무역관리령 16항에서 수출 금지 품목이 아니더라도 안보상 위협이 된다고 판단할 때 수출을 제한하는 '캐치올 규제'도 적용한다. 대량살상무기(WMD) 개발에 이용될 수 있다고 판단한 품목 40개와 재래식 무기에 이용될 수 있다고 판단한 품목 34개를 합쳐 총 74개를 캐치올 규제로 관리한다. 이 중에는 일본 언론에서 추가 규제를 할 수 있다고 밝힌 공작기계와 탄소 섬유가 포함됐다.

업계에서는 일본 정부가 캐치올 규제를 적용하는 품목 수출을 제한하면 파급력이 더 클 것으로 예상했다. 캐치올 규제를 적용하면 해당 품목 세부 사양에 상관없이 일괄적으로 수출을 제한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일본이 우리나라를 향한 전방위 수출 규제를 시행하면 양국은 물론 세계 경제 전반에 악영향을 끼칠 가능성이 크다. 반도체와 디스플레이 등 산업은 소재에서 완제품으로 '글로벌 밸류체인'을 두 나라가 이끌고 있기 때문이다.

한 예로 삼성전자·SK하이닉스는 글로벌 D램 시장에서 70% 안팎 점유율을 확보하고 있다. D램은 스마트폰·노트북 등 정보기술(IT) 제품은 물론 데이터센터에 쓰이는 필수 부품이다. D램 안에서 빠르게 정보를 받아들이고 기억하는 역할을 하는 필수 제품이다. D램이 제때 세계 주요 IT기기 제조업체에 제때 공급되지 못하면 전 세계 IT 수요에 문제가 발생한다.

이주완 하나금융경영연구소 연구위원은 “우리 업체들이 만든 반도체를 쓰는 국가는 중국, 미국, 유럽, 일본 등 다수”라며 “반도체를 사용하는 공장에서 부품 수급난이 심각해지면 물량이 감소해 가격이 급등한다”고 말했다.

일본 정부는 수출무역관리령 시행령을 개정, 오는 24일까지 의견수렴을 거쳐 각의 결정 후 공포한다. 그로부터 21일이 경과한 날로부터 우리나라를 백색국가에서 제외할 전망이다. 정부는 일본 측이 내달 22일을 전후해 한국을 화이트리스트에서 제외할 것으로 보고 있다.

변상근기자 sgbyun@etnews.com, 강해령기자 kang@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