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년씩만 일하는 '구직 유목민', 제조부터 SW까지 업계 전방위 확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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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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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산업계에 1년씩만 일하는 '구직 유목민'이 늘고 있다. 구직급여(실업급여) 제도의 허점을 이용해 1년 일한 뒤 구직급여를 받으며 쉬는 것을 반복하는 사람들이다. 기업은 안정적 인력 운용과 숙련된 인력 확보에 어려움을 겪고, 정부는 구직급여 지급액이 증가하는 문제가 발생한다.

15일 업계에 따르면 구직급여 제도의 허점을 노린 '구직 유목민'이 제조업부터 소프트웨어(SW) 개발까지 다양한 산업계로 퍼지고 있다.

중견 전자업체 A사는 최근 몇 년 동안 생산 라인에 내국인 대졸 사원이 증가했다.

A사 대표는 “그동안 러시아 등 외국인 근로자가 일하던 생산직을 국내 대졸 출신 직원으로 대거 대체했다”면서 “문제는 이들이 계속 일하는 것이 아니라 정확히 1년만 일하고 그만둔다는 데 있다”고 말했다.

대졸자들이 생산직을 택하는 것은 상대적으로 취업이 쉽기 때문이다. 반면 최저임금 인상으로 생산직 초봉이 사무직 초봉과 큰 차이가 없다. 퇴직 시기는 취업 1년이 지나 퇴직금을 수령할 수 있게 된 직후다. 퇴직 후에는 최대 4개월 동안 구직급여를 수령할 수 있다.

A사 대표는 “제조업체에서는 1년만 일하는 이들을 '대졸 생산직 유목민'이라고 부른다”면서 “퇴직 후 공무원 시험 준비나 대학원 진학을 준비하다 실패하면 다시 1년 일하는 과정을 반복하는 것으로 파악된다”고 전했다. 이 대표는 “이들은 지방자치단체별 구직급여 추가 지원 내용까지 살펴보면서 혜택이 더 많은 지역으로 이동한다”면서 “실업자 보호라는 취지와는 다른 방향으로 제도의 허점을 이용하고 있다”고 꼬집었다.

구직 유목민 문제는 비단 제조업만의 문제가 아니다. 상대적으로 전문성이 요구되는 SW나 게임 개발 분야에도 1년 일하고 쉬기를 반복하는 사람이 늘고 있다. 기업 입장에서는 인력을 교육시켜 업무 성과가 나올 때쯤 그만두는 일이 반복되면서 보이지 않는 손실을 보고 있다.

1년 일하고 쉬는 '구직 유목민' 수가 얼마나 되는지 정확히 집계하기는 쉽지 않다. 다만 최근 구직급여 지급액이 급증하고 있는 것으로 유추할 수 있다. 국내 구직급여 지급액은 올해 들어 발표 때마다 최고액을 갈아치웠다. 지난 6월에는 5월보다 다소 줄어든 6816억원을 기록했지만 전년 동월 대비로는 20.6%나 증가했다.

구직급여가 늘어난 것은 단순 실업자 외에 '구직 유목민'이 상당수 포함됐기 때문으로 추정된다. 이에 따라 제도를 악용하기 위해 자발적으로 실업 상태가 되는 사람을 걸러내는 보완책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성태윤 연세대 경제학부 교수는 “생산직에 젊은 대졸 인력이 가는 것 자체는 문제가 안 된다”면서도 “다만 일하는 기간이 워낙 짧고, 그 후 실업급여를 받아 가는 것은 이슈가 될 수 있다”고 진단했다. 성 교수는 “실업급여는 다음 일자리로 찾아가는 과정에서 어려운 상황에 놓여 있는 실직자를 돕거나 더 나은 자기계발을 지원하기 위한 것”이라면서 “실업급여가 실제 공무원 시험 준비 자금으로 사용되는 것은 곤란하다”고 덧붙였다.

권건호 전자산업 전문기자 wingh1@etnews.com